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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아인 오방간다’ 제주 4·3 사건 당시 폭거 일으킨 박진경 중령, 아직도 동상과 추모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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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진병훈 기자) ‘도올아인 오방간다’ 마지막 회에서는 아픔을 간직한 섬, 제주도에 관해 알아봤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민 전체가 후원한 3만 명의 자발적 모임이 있었다. 그들은 자주 통일 민족국가를 세우자고 연호했다.

그런데 기마 경찰의 말발굽에 한 아이가 다쳤고 이후 경찰의 진압이 시작됐다.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어린이를 껴안은 한 여성이 사망한다.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총파업에 들어갔으나 미 군정청의 조병옥 경무부장은 경찰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오히려 가혹한 탄압을 명령한다.

3월 12일 트루먼 독트린이 선포되면서 제주도에서는 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미·소 냉전이 시작되자 주한 미군의 윌리엄 사령관은 제주도민들은 필요 없다고 발언한다. 그저 제주도를 점령할 영토로만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미 군정의 보호 아래 수천 명의 제주도민이 검거됐고 고문치사로 학생 2명이 사망한다.

1948년 4월 3일 분노한 제주도민들이 12개의 경찰지사를 습격한다. 그들은 매국, 단선, 단정을 결사반대했으며 조국의 통일과 독립, 완전한 민족 해방을 위한 궐기를 진행한다.
 
한반도 전쟁을 예견했던 제주도민들은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도 보이콧한다.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지만 제주도민들의 지지를 못 받은 것이다. 화가 난 이승만은 제주9연대장으로 박진경을 임명하고 제주도 토벌을 감행한다.
 
박진경은 일본 군인 출신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제주도일 뿐이며 30만 명의 도민들이 희생하더라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미 군정 명령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던 박진경은 죽은 아버지를 껴안고 있는 어린 학생도 사살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벌어진 학살. 불과 27일 만에 체포된 수만 6,000여 명이고 희생자는 2만 5천~3만 명에 이른다.

전사자 군인은 180여 명, 경찰은 140여 명이었다. 

박진경의 폭거에 분노한 손선호 하사, 문상길 중위는 암살을 기획한다. 

“제주도민 이름으로 너를 처단한다” 1948년 8월 18일 새벽 3시 15분. 박진경은 그렇게 사살된다.

당시 손선호 하사는 30만 도민과 3천만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도망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상길 중위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미 군정 지휘하에 한국민을 학살하지 말라며 염원했다.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한 방청객은 제주 4·3 항쟁에 관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30만 제주도민을 모조리 죽여도 무방하다고 밝힌 박진경의 동상이 남해에 있다. 또한 제주도에는 추모비도 있다.

제주 4·3 특별법은 2000년에 제정돼 19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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