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종합] '스페인 하숙', 재방송 시청을 부르는 차승원과 한국인 순례자의 대화

  • 최정호 기자
  • 승인 2019.03.24 01:46
  • 댓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정호 기자] '걷겠다'는 의지는 용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문명과 떨어져 땅과 하늘만을 바라보며 수백 킬로미터를 걷겠다'는 것은 분명 용기다. '스페인 하숙'은 우리가 잃어버린 용기를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걷기'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순례자들을 보여준다.

지난 22일 tvN ‘스페인 하숙’에서는 본격적으로 하숙집 영업을 시작한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의 모습을 조명했다.

차승원, 배정남, 유해진 세 사람은 순례길을 걷지 않는다. 그들은 순례길 옆 작은 마을에서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문다. 한 자리에 머물면서 매일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럼 순례자들은 이 곳을 모두 스쳐지나간다. 밥을 먹고, 씻고, 빨래하고, 잠을 잘 뿐이다. 그들이 머무는 시간은 24시간도 채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은 세 사람에게 아주 작은 것들을 남겨놓고 떠난다.

홀로 걸어온 한국인 손님이 혼자 밥을 먹는동안 유해진은 편안하게 다가가 손님 곁을 지킨다. 그리고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나이에서 오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희한한 자부심도 없이, 지나칠 정도로 신상을 캐묻는 무례함도 없이 말이다. 이 긴 여정에 대한 유해진의 물음에 이 손님은 실제로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해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전세계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그 길을 걷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오로지 걷는 일만이 존재하고 매일 그것을 해내는 동안 우리 안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더라도 매일 길고 긴 산책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짊어지는 삶의 무게가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는 어깨 위에 얹어진 실질적인 배낭의 무게로 변환될 뿐이다. 단지 앞을 향해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체념할 수 있게 되고, 강한 의지를 갖게 되기도 한다. 걷지 못하는 이라도 다르지 않다. 바퀴나 목발을 내딛더라도, 사람들은 앞을 향한다. 미래는 앞에 놓여졌기 때문이다.

'스페인 하숙'은 용기를 잃어버린 세대, 너무나도 많은 실패를 겪어 이제는 작은 성공조차도 포기하게 된 우리 세대들에게 '걷기'라는 아주 간단한 행위를 통해 잃어버린 도전과 실패, 그리고 용기를 다시 거머쥐길 바라는 것 같다.

'스페인 하숙'의 제작이 처음 발표됐을 때 '윤식당'과 '효리네 민박'을 섞어놓은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 PD 특유의 삼삼한 맛, 너무 삼삼해서 결국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맛'으로 늘 그랬던 것처럼 전작을 답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물론 '스페인 하숙'을 보며 나 PD의 수많은 전작들이 떠오르지 않는건 아니었다. 윤식당,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까지 짬뽕된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도 있다.

tvN '스페인 하숙' 방송 캡쳐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한 나름의 지침(숙소에서는 매트리스만 제공하므로 침낭은 필수다, 슬리퍼는 각자 준비해서 갈아신는다 등)을 방송 중간중간 곳곳에 새겨넣은걸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제작진 역시 이 용기를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저런 용기가 있었는데' 혹은 '그런 용기가 단 한번이라도 날 스쳐 지나가기라도 한 순간이 있었나'. 아마 그런 마음으로 시작되었으리라. 순례길에 대한 정보와 순례자들의 마음을 유난스럽지 않게 드문드문 심어 둔 것이 마치 시청자들에게 어서 산티아고로 향할 것을 바라며 슬그머니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페인 하숙'이 내민 손을 우리는 잡을 수 있을까. 우리가 동경하고 원하던 바로 그 용기를 우리는 앉은 채로 바라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단지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거머쥘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용기가 없어서도, 게을러서도 아니다.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느라 일어서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어서는 방법을 아예 잊어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tvN '스페인 하숙' 방송 캡쳐

'스페인 하숙'이 끝날 때쯤이면 이 방송을 본 시청자 모두 어쩌면 새로운 문 밖을 향해 나갈지도 모른다. 순례자들이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다고 조심스레 말한 차승원처럼, 첫 손님들을 맞이한 스페인 하숙의 영업 1일차를 보고 나는 이미 일어나 앞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차라리 뛰어들고 싶을 정도의 삼삼한 욕망이 조용히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이 남기고 떠난 아주 작은 것들이 차승원, 배정남, 유해진 세 사람에게 차곡히 쌓여  그들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벌써부터  마지막 회가 기대된다.

tvN ‘스페인 하숙’은 매주 금요일 저녁 9시 10분에 방송된다.

24일 tvN에서는 14시 37분, XtvN에서는 21시 45분에 ‘스페인 하숙’ 2화가 재방송된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