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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아인 오방간다’ 일제 강점기 신음하고 자기반성했던 윤동주, ‘십자가’와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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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진병훈 기자) ‘도올아인 오방간다’ 10회에서는 윤동주 시인에 대해 살펴봤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1년 전에 팔복이라는 시를 썼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8개를 메꾸고 마지막에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마무리한다.

도올 김용옥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복을 얻기 위함이 아닌 영원히 슬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일제에 쫓겨 남의 땅에서 억압받는 상황. 영원히 슬플 수밖에 없다는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항상 생각했던 윤동주는 1941년 5월 연희전문학교 4학년 당시에는 십자가를 썼다.

하늘과의 소통이자 희망인 ‘햇빛’으로 시작해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윤동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세계를 동경한 것으로 풀이된다.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린다는 말에서 얼마나 처참한 심정인지 알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은 일제 치하에 신음하는 우리의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시가 십자가라고 확신했다.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 방송 캡처

1940년 말에는 민족말살정책으로 한국어 사용 금지, 창씨개명까지 강요했다.

당시 이광수는 시행령 약 10일 후 자신은 천황의 신민이며 내 자식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윤동주는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가 존경한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일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결국 창씨개명을 하고야 만다.

히라누마 토오츄우로 창씨개명한 윤동주는 처참했던 심경을 참회록으로 작성한다.

창씨개명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던 윤동주는 참회록을 통해 자기반성과 성찰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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