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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을사삼흉’, 대표적 친일파로 악명…“후손들 중 독립운동가가 있다?”

  • 이창규 기자
  • 승인 2019.03.0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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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규 기자] ‘을사오적’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눈길을 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독립운동과 관련한 내용에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이름이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을 체결할 당시,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반대했지만 을사오적이 찬성해 조약이 체결됐다.

줄여서 오적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학부대신 이완용,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군부대신 이근택으로 구성돼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박제순은 후에 일본으로 넘어가 여생을 즐기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지용은 일본에 받은 돈을 도박으로 탕진한 뒤 사망했다.

이근택은 여러번 살해 위협을 받았지만, 위기를 넘기고 후에 자연사했다. 권중현은 한일 병합 당시 자작 작위를 받고 살다 자연사했다.

대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완용은 1909년 이재명 의사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이후 후작 작위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다가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들은 친일인명사전 맨 첫장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명하다.

더불어 을사년 세명의 흉악한 무리라는 뜻의 ‘을사삼흉’ 도 있는데, 궁내대신 이재극, 법부대신 이하영, 탁지대신 민영기가 그들이다.

이하영은 특히나 조약 체결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친일 행위를 저질렀다.

그렇지만 이 중 박제순의 손자 박승유는 조부의 행적을 부끄럽게 생각해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서 탈영했다.

그리고는 광복군으로 합류한 뒤 초모(의병 모집) 활동 및 음악을 통한 심리전 등으로 활약했다.

광복 이후에는 성악가로 활동하며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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