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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문]‘김현정의 뉴스쇼’ 최영미 시인, 직접 심경 밝혀…“내 인생의 모든 것 걸고 싸워 이길 것”

  • 박정민 기자
  • 승인 2019.02.1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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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기자] 지난 15일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의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이 최영미 시인의 성추행 폭로를 허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CBS 표준FM ‘김현정의 뉴스쇼’

이에 18일 방송된 CBS 표준FM ‘김현정의 뉴스쇼’는 최영미 시인이 직접 심경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최영미> 안녕하세요. 

◇ 김현정> 실은 결과가 나오는 순간까지 상당히 마음을 졸이셨던 걸로 아는데 1심 결과 받아들고는 소감이 어떠셨어요? 

◆ 최영미> 일단 저는 소송이 걸린 뒤에 제가 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은. 

◇ 김현정> 어떻게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그렇게 확신하셨습니까? 

◆ 최영미> 왜냐하면 이게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니까, 저한테는. 

◇ 김현정> 당연한 사실이니까? 

◆ 최영미> 내가 분명히 본 사실이고 들은 사실이기 때문에 저는 뭐 지는 걸 상상도 안 했고 저는 사실은 이길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래도 판결 시한이 다가오니까 하루 전날부터는 좀 마음이 조마조마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렇죠. 그렇게 확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는 않은 소송이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입증이 될 것인가. 

◆ 최영미> 그게 문제였죠. 소송 걸린 초기에도 사실 제가 증거 자료를 찾는 데 게을렀어요. 처음에는 그냥 너무나 기가 막히게. 아니, 거꾸로 내가 오히려 고소를 해야 되는데. 내가 피해자인데. 그래서 생각을 해 봤죠. 옛날 제가 1990년도 후반에 작가회를 탈퇴했어요. 그래서 당시 24년 전에 같이 술을 마시던 문인들과 연락이 몇십 년간 끊겼어요. 그러면 나랑 같이 그 장면을 봤던 사람, 목격자를 찾아야 되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최영미> 그런데 그 20여 년 전에 같이 어울린 문인들 이름도 잘 생각 안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사람도 있고. 그때 같이 어울렸던 문인들의 증언을 받아야 되는데 그들 연락처를 아는 게 큰일이었어요. 

◇ 김현정> 결국 찾아내셨어요? 

◆ 최영미> 한 사람을 기억해내서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또 그때 누구도 있었다, 누구도 있었다 해서. 

◇ 김현정> 연결, 연결, 연결해서. 

◆ 최영미> 그리고 출판사 편집부에 물어봐서 그 문인들 연락처를 알아냈죠. 

◇ 김현정> 그분들이 나와서 그러면 증언을 해 주셨습니까, 목격담을? 

◆ 최영미> 한 분이 나왔는데. 그러니까 저랑 19년 만에 전화 통화를 했을 때는 자기도 그 현장에 있었다. 자기도 최 시인이 본 걸 자기도 봤다. 그 자위 추태를 봤다라고 분명히 전화로 대화할 때 얘기해서 제가 그 통화를 녹취했는데 막상 그분이 법정에 나와서는 그 진술을 번복했어요. 

◇ 김현정> 처음 전화받았을 때는 기억이 난다고 하셨던 분이? 

◆ 최영미> 많이 봤다. 그런 거, 고은의 자위 추태를 많이 봤다. 최영미 시인이 본 걸 나도 봤다, 여러 번 봤다. 이렇게 말하던 사람이 막상 법정에 나와서는 증인으로 나와서는 그건 번복하면서 자기가 말한 건 고은 시인의 기행이었지 추행이 아니었다. 제가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증인 신문 녹취서를 봤죠.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해서 제가 깜짝 놀랐죠. 

◇ 김현정>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나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는 문단의 어른들이 나서주지 않아서 그 점이 참 힘들었다. 이렇게 소회를 밝히신 걸 제가 봤는데. 그러니까 지금 목격자인 그분도 그렇고 또 나서 주지 않는 다른 문단의 어른들도 그렇고 왜 그러셨다고 생각하세요? 

◆ 최영미> 몸을 사리는 거죠. 괜히 정의감에 나섰다가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하니까. 저는 그분들의 그런 몸사림, 그런 걸 이해는 해요. 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도 제가 소송 걸리기 전까지는 제가 한 번도 EN 시인, 괴물. 제가 시에서 괴물이라고 표현한 그 EN 시인의 실명을 확인해 주지 못했거든요. 저도 시는 썼지만 겁이 나서. 

◇ 김현정> 솔직히 겁이 나서, 솔직히 두려워서. 

◆ 최영미> 그래서 그런 거 이해하고 사람들은 문인, 이런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직업이고 자유로운 사람들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문인들도 하나의 직업이고 그 세계에서 최정점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그리고 한국 문인들은 평론가이자 교수이자 편집위원이자 심사위원인 문단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요. 사실 그래서 문단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고은 시인도 두렵지만 또 고은의 뒤에 있는 사람들. 그 살아 있는 권력이 두려웠던 거죠. 이해해요, 충분히. 

◇ 김현정> 그래서 결국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된 건 결국 그 당시 최영미 시인이 써놓은 일기였다면서요? 

◆ 최영미> 다른 증거도 많아요. 물론 일기도 증거 중의 하나죠. 

◇ 김현정> 94년 6월 2일 최 시인이 작성한 일기. 광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니면 오기인가. 고 선생 대 술자리 난장판을 생각하며. 이 부분. 

◆ 최영미> 그 부분도 증거죠. 증거고 제가 아까 말씀드린 저랑 전화 통화할 때 자기도 그런 고은의 추태라고 봤다라고 말한 사람의 녹취 이것도 증거죠. 그렇죠? 

◇ 김현정> 보니까 고은 시인의 일기가 출판된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 보면 김현과 알몸으로 춘천의 술집에서 춤을 추었다라든지 알몸으로 춤추며 마셨다. 술 취해서 내가 내 옷을 찢었다. 왜 나는 술만 마시면 광마로 날뛰는가. 이런 고은 시인 본인이 적은 이런 부분들도 증거가 됐다. 또 이런 얘기도 들었고요. 

◆ 최영미> 훌륭한 증거죠. 보세요. 첫째는 고은 시인은 이미 그 옛날 70년대 일기인데 70년대부터 알몸으로 술 마셨다는 거잖아요. 술 마실 때 옷을 벗는 버릇이 있다는 걸 스스로 자백한 거잖아요, 일기에서. 그렇죠? 그리고 또 술 마시며 내 옷을 찢었다. 신체 노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라는 거, 옛날부터. 두 번째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것. 즉 부끄럽게 생각했다면 출판하지 않았겠죠. 자신의 그런 신체 노출, 그런 추행에 대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니까 나중에 제가 94년 봄 경에 목격한 그런 자위 추태에 대해서도 그걸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몰라요. 왜냐하면 그런 일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 김현정> 많았기 때문에. 

◆ 최영미> 그리고 제가 문단에서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술 마시다가 옷 벗었다라든가 여러 가지 추행과 기행에 대해서. 저한테 나중에 제보한 분들도 있고 자기가 아는 사실을. 

◇ 김현정> 그런데 고은 시인 측에서는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1994년 그 술자리에서 그런 일을 정말로 최영미 시인이 목격했다면 어떻게 거기에서 아무 반응도 없을 수 있었겠는가. 

◆ 최영미> 저는 그때 너무나 놀라서 그냥 그 자리에 얼어붙었어요. 저는 그날까지 태어나서. 일단 그 술집에서 누웠다는 거, 의자 위에. 눕는 남자도 처음 봤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만 아니라 자기 손으로 정말 제가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가 꺼려지지만 그 아랫도리를 주무르는 거. 그 장면은 정말 그 전에도 못 봤고 그 후에도 본 적 없어요. 너무 놀라워서 그냥 가만히 있었죠, 어떻게. 그리고 나보다 한 27년, 거의 30년 선배인 분이 그런 짓을 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일단 그때는 너무 놀라서 헉 이러고 있는 거죠. 보통 사람이 다 그렇지 않나. 

◇ 김현정> 그런데 그걸 집에 가서 일기로 기록한 게 이번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 건데. 그런데 지금 고은 시인 명예회복대책위라는 게 꾸려졌어요. 그 대책위 쪽의 주장은 이번 재판이 너무 여론 재판이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최영미> 무슨 여론 재판은... 법이 살려준 줄 알라고 하세요. 제가 만약에 여론 재판을 하고 싶었다면 제가 그동안 더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됐겠죠. 저는 그냥 깨끗이 법정에서 법리 다툼으로 이기고 싶었어요. 

◇ 김현정> 사실 저희도 여러 번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마는 재판 결과 나오고 나서 하겠다. 이렇게 미루셨던 기억이 나요. 고은 시인에 대해서 어쨌든 1심 승소했습니다.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어주신다면. 

◆ 최영미>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역고소 하는 일은 정말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에요.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고소를 하면 다른 피해자들이 누가 나서서 증언을 하겠습니까? 모든 피해자들이 침묵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거죠. 그래서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한국 정부에다가 이걸 시정 권고를 했어요. 저는 제가 이번 재판에서 확실하고도 완벽한 승리를 거두어서 앞으로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고소하는 그런 뻔뻔스러운 짓을 하면 건질 게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 재판에는 예외가 있겠지만 저는 우선 이게 제 혼자 힘이 아니라 여럿이 연대해서 이루어낸 승리라는 거. 거기에 의미를 두고 싶고 물론 미투가 남성과 여성의 싸움은 아니죠. 과거와 미래와의 싸움이죠. 그래서 이 사회가 남녀가 평등하는 사회로 가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 분기점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피해자가 잘못하지 않았냐는 둥 이런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김현정> 문단의 최정점에 있는 어떤 권력자. 문단 내 최고 권력자를 상대로 해서 지금 이 싸움을 하고 계신 건데. 혹시 이러다가 나 글 못 쓰게 되는 거 아닌가. 더 이상 문단에서 설 자리 없어지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은 솔직히 안 드세요? 

◆ 최영미> 저 그런 걱정한 적 한 번도 없어요. 글쎄요. 왜냐하면 저는 이 싸움이 저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라 아주 먼 미래의 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지금. 내가 내 인생 모든 걸 걸고 싸워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고 앞으로 문단에서 내가 이미 지금 소송하면서 따돌림당하고 있죠. 그래서 다만 저의 걱정은 제가 시를 못 써요, 이 소송 걸린 뒤로. 지금 정신이 사나워서 시도 안 나오는데 싸움이 끝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겠죠, 평화로운 상태로. 

◇ 김현정> 알겠습니다. 폭풍이 있다면 내가 다 맞겠다. 이런 말씀도 하셨더라고요. 2심, 3심 더 큰 폭풍이 올 수도 있는데. 

◆ 최영미> 저는 원래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들이 내게 싸움을 걸었으니까 제가 기꺼이 응대해 주겠고 고은 시인 명예추진위원회. 제가 오늘 처음 듣는 얘기지만 몇십 명이든 몇백 명이든 그들이 아무리 그렇게 해 봤자 제가 20여 년 전에 술집에서 목격한 그 자위 행위는 없어지지 않아요. 그들이 아무리 실력이 좋은 변호사들을 붙이고 상대방 변호인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저의 정당함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 김현정> 오늘 여기까지. 여기까지 말씀 듣고요. 2심, 3심 더 관심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선생님, 고생 많이 하셨어요. 오늘 고맙습니다. 

◆ 최영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은 시인의 명예 훼손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최영미 시인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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