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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수도는 탈린…‘그의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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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이예지 기자) 에스토니아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뜨겁다.

에스토니아의 수도는 탈린이다.

기원 전 오늘날의 에스토니아에 해당되는 지역에는 핀우고르어족의 에스토니아인이 정착하고 있었으나, 민족 대이동시대부터 게르만인·슬라브인·바랴그인(노르만인)이 들어왔다.

이들 중 독일인과 덴마크인은 가톨릭교를, 러시아인은 그리스정교를 에스토니아에 전파했다.

이에 따라 일찍부터 두 그리스도교들의 충돌이 군사·통상상의 이해관계를 수반하면서 되풀이됐다.

이 지역에서 전래되어 온 ‘빙상의 싸움’은 이러한 관계로 특히 유명하다.

근세에 들어와서는 프로테스탄티즘도 전파됐으며, 30년전쟁을 계기로 가톨릭을 신봉하는 폴란드와 프로테스탄트를 믿는 스웨덴이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약 100년 동안 스웨덴이 이곳을 지배했으나, 북방전쟁으로 1721년 러시아가 새로운 지배자가 됐다(니스타드 조약).

러시아 치하에서 발트 3현이라 일컬어진 이 지방에서는 독일인이 들어오고 농노제가 폐지됐으며 도르파트대학이 흥성하여 문화가 크게 발전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러시아의 문호로서 더욱 개발됐다.

1917년 11월혁명(구력 10월)이 일어나자 에스토니아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독립했으며, 정권이 여러 차례 교체됐다.

네이버 에스토니아 국가정보
네이버 에스토니아 국가정보

그러나 결국 핀란드와 영국의 지원을 받은 백위군이 승리하여 1919년 11월 소련과 휴전조약을 맺었으며, 1920년 2월 평화가 회복됐다.

1934년 라트비아·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국 군사동맹을 결성하는 반소친독의 파시스트 체제를 폈으나, 1940년 7월 선거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구소련에 가입했다.

그후 한때 독일이 점령했으나, 1944년 독일의 패망으로 다시 구소련에 복귀했다.

1988년 발트해 3국 중에서 처음으로 공산당 이외의 정치 단체인 인민전선이 결성됐다.

인민전선은 1990년 2월 최고회의 선거에서 압승했으며, 1991년 3월 3일 국민투표에서 77.8%가 독립을 지지했다.

1991년 8월 옛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발생을 계기로 완전 독립을 선언했고, 9월 구소련이 이를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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