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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언급한 장기려 박사, 그는 누구?…청렴 결백한 ‘한국의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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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한수지 기자)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이 장기려 박사를 언급하며 화제인 가운데 그가 누구인지 이목이 모이고 있다.

장기려 박사는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야인시대 의사양반 역의 모델이 되었던 백인제 박사의 수제자이다. 그는경성의전을 졸업하고 경성의전 외과 조수로 입문하고 나고야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세브란스 외과 이용설의 추천으로 평양연합기독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한다. 그 이후 평양의과대학, 김일성종합대학의 외과 교수를 지내던 중 6.25 전쟁 중 차남 장가용과 단신으로 월남하여, 피난민들로 가득한 부산에서 복음병원을 세웠다.

김일성을 수술해준 인연 덕에 장기려는 북에서 매우 우대받았는데 모범근로자로 선정되어서 포상도 자주 받았고 여러차례 상도 받았다. 김일성이 맹장염으로 앓아누은 적이 있었는데 김일성은 장기려부터 찾았지만 그와 연락이 안돼서 소련 군의관이 집도했는데 북에서는 장기려가 수술했다더라라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장기려의 명성은 높았고 북에서의 지위도 높았다. 심지어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교회에도 가고 예배를 할 특권도 주어졌다. 게다가 그가 월남했을 때도, 북에서는 그가 월남한 것이 아니라 납치된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덕분인지 이북에 남은 아내와 딸들과 아들들은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월남자 가족은 동요계층, 심지어 적대계층에 편입되어서 수모를 당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례적인 사례이다. 

tvN ‘알쓸신잡3’ 방송 캡처
tvN ‘알쓸신잡3’ 방송 캡처

평양 철수로 월남한 직후에 북에서 우대받은 일로 인해 자주 방첩대에 끌려가서 문초를 당했다. 다행히 한 미국인 선교사가 신분을 보증해줘서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때부터 외과의사로 살아왔고, 그의 아래에서 일한 제자들은 모두 다 외과 전문의이긴 하나 해방이후 국가가 주관하는 첫 외과전문의 시험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의사가 되려고 공부했지 전문가가 되려고 공부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대한외과학회 회장까지 한 적도 있다.

부산에서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진료하였다. 이외에도 부산에 설립한 의료시설이 많다. 부산지역 대학병원 외과의 뿌리는 장기려로 시작되거나 직간접으로 연관되어있으며, 심지어 모 대학병원에는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그는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향년 84세에 지병인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매우 청빈한 삶을 살았으며, 죽을 때까지 본인의 개인 사택 없이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옥탑방에서 기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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