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진병훈 기자)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약 60km 떨어진 우퇴위아에는 노동당 청년동맹의 여름 캠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2시간 직전 총리 공관이 자리 잡은 오슬로 정부 청사 건물 입구에 주차돼 있던 폭스바겐 차량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매년 그러하듯 평화로운 행사였다.
이 폭발로 8명이 사망했고 정부와 경찰은 폭발을 수습하느라 오슬로 밖으로 빠져나가는 차량을 봉쇄하지 못했다.
폭탄 테러를 감행한 자는 32세 백인 남성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그는 아무 제지도 없이 우퇴위아 섬으로 건너갈 수 있었고 경찰 복장까지 한 채 태연하게 총구를 들어 10대 청소년들에게 난사를 시작했다.
폴 그린그래스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우퇴위아에서 담담하게 진행되는 민주주의의 바람을 그대로 입체화했다.
이 말도 안 되는 도륙은 단순히 극우로 시작했지만, 세월의 흔적 속에 쌓여 가는 민주주의와 무관심의 두려움은 담대하게 그려냈다.
노르웨이에서는 지금도 잊지 말아야 할 사건으로 기억되지만 증오 범죄가 뚜렷해지는 사회 시대를 따라가듯 무섭게 잊혀져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혐오의 중심이 된 난민 출신 여학생이 영화 속에서 던진 질문은 폴 그린그래스가 추구하는 세계관과 맥을 같이 한다.
폴 그린그래스가 늘 그랬듯 80분의 분노와 폭력을 쏟아냈던 우퇴위아에서 어렵사리 빠져나오더라도 그 차갑고 건조한 시선은 교정할 마음이 없다.
노르웨이는 현재 극우를 주체로 이어지는 혐오가 면역되어 가는 두려움 속에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폴 그린그래스가 서스펜스와 동의어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드라마의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