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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고향으로’...故 신성일, 최불암-이순재-김수미-안성기 등 빈소 조문 행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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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희주 기자) ‘국민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25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1세.

신성일 측 관계자는 이날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 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께서 4일 오전 2시 반께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성일은 한국 영화사의 상징과도 같은 배우다. 영화 507편을 주연,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했다. 1960∼1970년대 충무로에서 영화와 함께 청춘을 보냈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톱스타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만 119명에 달한다. 신성일과 함께 가장 많은 작품을 한 여배우는 윤정희(74)로 99편에 함께 출연했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경북도청 공무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걸출한 용모에 공부도 잘 하는 모범생이었다. 

대구 수창초등학교, 영덕중을 거쳐 명문 경북고에 합격했다. 서울대 진학이 목표였으나 2학년때 꿈을 접어야 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계가 깨지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빚쟁이들을 피해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서울대 상대에 원서를 넣었으나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던 환경 때문에 떨어졌다.  

 방황하던 신성일은 청계천에서 두세 달 호떡 장사를 했다. 재수를 하던 중 우연히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가고, 1957년 신상옥(1926~2006)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 배우 모집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전속배우가 됐다. 그때 신 감독으로부터 ‘뉴스타 넘버 원’이란 뜻의 ‘신성일(申星一)’이란 예명을 받게 된다. 성은 신 감독의 성씨를 따랐다.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으며, 1960년 신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코미디를 가미한 멜로 드라마로 유례없는 히트를 기록했다. 조각 같은 용모와 강렬한 눈빛으로 반항아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독보적인 스타가 됐다. 

1962년 ‘아낌없이 주련다’, 1963년 ‘가정교사’ ‘청춘교실’로 스타덤에 올랐다. 1964년 김기덕(1930~2017)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뒤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로맨스 빠빠’에서 처음 만난 배우 엄앵란(82)과 1964년 결혼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하객과 시민 4000여명이 몰려 큰 화제를 모았다. 

‘떠날 때는 말없이’(1964) ‘초우’(1966) ‘별들의 고향’(1974) ‘겨울 여자’(1977) 등 숱한 히트작을 내놓았다. 1966년에는 한 해 동안 89편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지낸 고인은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고,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제작·감독한 작품은 ‘연애교실’(1971)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이다. 감독한 영화는 ‘그건 너’(1974), 제작작은 ‘코리안 커넥션’(1990) ‘남자시장’(1990) ‘물위를 걷는 여자’(199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1991) ‘안개 속에서 2분 더’(1995)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한편, 4일 세상을 떠난 배우 신성일의 빈소에는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고인의 영정은 이날 오전 11시 40분께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로 옮겨졌으며, 정오께 부인 엄앵란 씨를 비롯한 유족이 입장했다.

첫 조문객은 원로배우 최불암이었다. 오후 1시께 빈소를 방문한 그는 1시간가량 빈소에 머물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날 오후 빈소를 찾은 이순재(83)는 “60년대 영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거목이 한명 갔다. 이는 팬들이 다 기억할 것”이라며 “너무 일찍 간 것 같아. 조금 더 할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신영균은 “배우라는 직업은 행복한 직업이다. 80년을 살다 갔지만, 영화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행복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천당 가서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배우 안성기는 이날 오후 8시 30분께 빈소를 찾았다.

안성기는 “저에겐 특별한 기억이 있는 분”이라며 “제가 60년대 아역배우로 선배님과 활동했고, 그 모습을 지금까지 봐왔다”면서 “성인이 돼서도 80년대 좋은 영화 한 편을 같이 했다”며 고인과 추억을 되짚었다.

김수미는 “당신(고인)은 천생 배우셨다”며 “불과 한 달 전 통화했을 때도 ‘수미씨, 나 괜찮아’ 이러시면서 굉장히 자신하셨는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배우 하라고 그러셨나 보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도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선우용녀, 김수미, 박상원, 문성근, 임하룡, 이동준, 심양홍, 문희, 박정수, 조인성, 이동준, 한지일을 비롯한 배우와 배창호, 정진우, 이창동, 정지영 영화감독, 그리고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과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 이용관 부산영화제 이사장, 방송인 임백천과 가수 인순이 등이 다녀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명박 전 대통령, 강창희 전 국회의장 등은 조화를 보냈다.

고인의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에 진행하며, 오전 11시 서울추모공원으로 고인을 옮겨 화장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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