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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픽] 변화하는 드라마, 진화하는 여성 캐릭터
  • 한수지 기자
  • 승인 2018.07.1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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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생긴일’ ‘꽃보다 남자’ ‘도깨비’ ‘김비서가 왜그럴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 ‘미스 함무라비’

[한수지 기자] 드라마는 빛바랜 보물 상자처럼 오래 담아두고 꺼내보고 싶은 기억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과 유행 아이템, 유행어, 내가 사랑하던 그 시절 주인공까지.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추억을 공유하는 드라마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화하고 성장했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같이 진화한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바로 여성 캐릭터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드라마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가 흥행 공식으로 통용되곤 했다.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예쁘지만 가여운 소녀. 그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했다. 한마디로 수동적인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했다.   

어리바리해서 늘 사고만 치거나, 위험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왕자님의 도움을 기다리거나. 그렇기에 여자 주인공 주위에는 그를 좋아하고 지켜주는 흑기사들이 최소 2명 이상은 있어야 했다. 위험에 빠지는 순간마다 귀신같이 나타나 구해줘야 하는 이가 필요하기에.

고아라-이보영-박민영-김고은-구혜선-하지원 / 톱스타뉴스 HD포토뱅크
고아라-이보영-박민영-김고은-구혜선-하지원 / 톱스타뉴스 HD포토뱅크

# 2000년대 신데렐라 스토리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

SBS ‘발리에서 생긴 일’ 포스터
SBS ‘발리에서 생긴 일’ 포스터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이수정(하지원)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캐릭터에 가까웠다. 재벌 왕자 정재민(조인성)과 그녀를 사랑하는 흑기사 강인욱(소지섭)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수정은 끝내 그 누구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며 모두 총에 맞아 죽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재민은 인욱과 함께 누운 수정을 보며 분노에 차 두 사람 모두에게 총을 쏘고 본인도 생을 마감한다. 극 중 수정은 갈대 같고 우유부단한 캐릭터의 절정을 보여준다.

2009년 ‘꽃보다 남자’

KBS ‘꽃보다 남자’ 포스터
KBS ‘꽃보다 남자’ 포스터

‘꽃보다 남자’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가난하고 씩씩한 여주와 그를 둘러싼 무려 네 명의 꽃미남 재벌(F4)의 이야기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해당 드라마는 금잔디(구혜선)를 좋아하는 구준표(이민호), 윤지후(김현중)의 삼각관계가 주축으로 흘러간다. 당시 드라마 여주의 공식 중 하나처럼 금잔디 또한 매사 밝고 천방지축에 의협심이 넘친다. 그러나 그 지나친 의협심은 늘 위기를 낳고 매번 백마 탄 왕자님(F4)의 도움을 받게 된다. 금잔디는 대처할 능력은 없으면서 정의감만 불타는 민폐 캐릭터로 비치며 시청자들에게 고구마를 한 움큼 먹은듯한 답답함을 선사하곤 했다.  

그러나 2010년대로 넘어오며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점차 뚜렷하게 변화했다. 자신의 주관을 당당하게 표출하며 누가 구해주기만을 바라는 수동적 캐릭터가 아니라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으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 2010년대 후반 신데렐라 스토리

물론, 앞서 언급했던 신데렐라 스토리는 2018년인 현재에도 여전히 각광받는다. ‘도깨비’가 그러하고 ‘김비서’가 그러하듯.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여성의 태도다. 

‘도깨비’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는 재벌보다 더 빛나는 도깨비와 진짜 재벌이 등장한다. 거기에 가엾고 사연 있는 여주도 함께. 그러나 ‘도깨비’, ‘김비서’ 속 여주는 남주를 향해 직진한다. 한눈팔지 않고 고백도 서슴없다.

2017년 ‘도깨비’ 

tvN ‘도깨비’ 스틸컷
tvN ‘도깨비’ 스틸컷

‘도깨비’ 첫 화에서 도깨비(공유)의 능력을 알아차린 지은탁(김고은)의 대사는 참으로 인상 깊다. “아저씨 능력이 이정도면 저 결심했어요. 맘 먹었어요 제가. 저 시집갈게요. 아저씨한테. 난 암만 생각해도 아저씨가 도깨비 맞는 것 같거든요. 사랑해요” 
무려 시작부터 남주한테 프로포즈하는 여주다. ‘사랑한다’ 고백해 놓고는 무공해 웃음을 발산한다. 이 당돌하고 귀여운 소녀에게 ‘심쿵’ 한 것은 비단 남성 시청자만은 아닐 것. 지은탁은 드라마 내내 사랑에 직진하고 감정표현에 솔직하다. 내숭이나 가식은 더욱이 없다.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도 없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소녀를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18년 ‘김비서가 왜 그럴까’

tvN ‘김비서가 왜그럴까’ 포스터
tvN ‘김비서가 왜그럴까’ 포스터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김비서, 김미소(박민영)는 9년간 김영준(박서준)의 비서로서 완벽한 업무 능력을 보여준다. 일에 있어서는 철저한 상하 관계를 유지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는 할 말 다 하고 의사표시 확실한 여성이다. 무려 유명그룹 부회장인 이영준이 고백을 하는데도 “부회장님은 제 스타일 아니세요”라고 말하는 당당함을 지녔다. 그러던 김미소가 이영준과 점차 사랑에 빠졌을 무렵,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오빠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어린 시절 함께 납치당했던 오빠를 이성연(이태환)으로 잘못 안 것. 더구나 그 오빠라는 사람이 김미소가 좋다고 공개 고백까지 한다. 그럼에도 김미소는 단호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완벽한 이영준(박서준)의 비서이자 여자로서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안심시킨다. 그렇기에 이성연(이태환)이 어떤 고구마를 선사해도 시청자들은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었다. 김미소는 이영준이 이성현(이영준의 과거 이름)이든 아니든 현재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물론, 그가 과거 납치당했을 때 자신을 지켜주던 그 오빠라는 사실까지 알았을 땐 사랑이 더 깊어진 후겠지만.

# 新여성 캐릭터

2013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포스터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포스터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판타지 로맨스와 법정물의 조합뿐만 아니라 신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내며 각광 받았다. 이보영이 연기한 장혜성 변호사는 당차고 솔직하고 때론 돌+아이 같은 행동도 서슴없이 한다. 아버지가 살해돼 법정에 선 어린 수하(이종석) 앞에 나서 증언을 하고, 수하가 자신 때문에 살인자가 될까봐 대신 칼에 맞기도 한다. 그리고 살인 누명을 쓴 수하를 대신에 죽을힘을 다해 그를 변호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드라마가 남자 주인공이 위험에 처한 여자 주인공을 구했다면 ‘너목들’의 장혜성은 처음부터 수하를 지키고 구해낸다. 물론 수하 역시 민준국(정웅인)의 위협 속에서 장혜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수하를 있게 해 준 것은 어떤 순간에도 끝까지 믿어준 장혜성이었다.  

2018년 ‘미스 함무라비’ 

JTBC ‘미스 함무라비’ 스틸컷
JTBC ‘미스 함무라비’ 스틸컷

‘미스 함무라비’는 그런 당찬 여성이 판사 옷을 입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이야기다. 극중 박차오름(고아라)은 지하철에서 성추행하는 남자를 현행범으로 붙잡아 신고하고, 회색빛 근엄한 법원에 초미니에 스틸레토힐을 신고 출근한다. 무조건 메뉴 통일을 외쳐야 하는 분위기의 단체 회식에서도 여유롭게 메뉴를 고르며 ‘스파게티’를 주문하는 뻔뻔함도 지녔다. 그의 젊은 혈기는 부정부패와 집단주의, 권위주의, 무사안일주의가 가득한 속물들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도한다. 때론 무모해 보일지언정 그는 용기 있고 또 멋있다. 

후천적 성역할 구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는 매스미디어의 역할도 무시하지 못한다. 미디어에서 비춰주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현실이 현재 보다 많은 여성 중심의 드라마가 생겨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앞으로 미디어가 선보일 여성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까. 흥행 계보를 이어갈 다음 주인공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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