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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나선 1020 영 페미니스트, 분노 표출 거침없어 “페미니즘은 생존기술, 탈코르셋은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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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희주 기자) 최근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성(性)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 모인 여성들은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렸지만 이들이 10대, 20대 젊은 여성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편파 수사에 대한 분노의 의미를 담은 붉은색 티셔츠와 모자, 마스크, 가방, 신발 등을 착용한 이들 중에는 ‘탈 코르셋’의 일환으로 숏컷을 하거나 반삭발까지 감행한 여성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이들은 ‘무X유죄 유X무죄’ 등을 외치며 다소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대통령을 두고 ‘재기해’라는 구호를 외치기까지 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재기해’는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지난 2013년 마포대교에서 투신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된 용어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뜻이다.  

 영 페미니스트들(Young Feminist·젊은 페미니스트)의 성 평등을 향한 열망은 선배 여성들의 그것보다 더 분노에 찬 표현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 여성혐오 콘텐츠를 ‘놀이’로 삼는 학교에서 자란 세대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 페미들이 오프라인 시위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힌 이유는 이들의 성장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희석되고 남자형제와 동등한 교육을 받으며 학교라는 사회에서 우수한 학업성취도로 두각을 나타내는 여학생들, 이른바 ‘알파걸’의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역설적으로 상당수 남학생들에게는 여성혐오가 싹트게 됐다.

 이들의 불만은 ‘일간베스트’ 등 여성혐오가 넘쳐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표출됐고 다시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주며 공고해지곤 했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우리나라 여학생들은 사상 처음으로 모든 영역에서 남학생보다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다. 읽기 능력은 물론이고 직전 평가인 2012년까지는 남학생이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여학생보다 성적이 더 좋았지만 그것마저 넘어선 것이다.  

실제 교실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흔히 체감할 수 있다. 80년대 초반부터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최근 학교 현장을 떠난 전직교사 이모(59·여)씨는 남학생이 전교 석차를 휩쓸던 시절 교사 생활을 시작해 남녀공학에서 남학생이 ‘바닥을 깔아주는’ 현상을 목격하며 퇴직했다.  

뉴시스 제공
뉴시스 제공

 이씨는 “지필고사 위주이던 80년대에는 전교 10위권 내 8~9명이 남학생이었다면 90년대 말부터 5대5로 비슷해지다가 2010년 이후에는 여학생들이 완전히 우세한 모습을 나타냈다”며 “수행평가가 많아져 평소 꼼꼼하게 학사관리를 하는 여학생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남학생 학부모들로부터 남·녀 따로 성적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항의도 곧잘 받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알파걸이 교실을 휘어잡는 상황과 ‘여성은 배려해야 할 약자’라는 사회적 통념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베타보이(알파걸의 선전에 위축되고 열등감을 느끼는 남학생)’들이 여혐문화를 활발하게 생산, 소비한 것이 영 페미들의 탄생을 촉발했다고 보고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1020 남성들은 온라인 상 여혐문화를 소비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주체”라며 “1020 여성들은 이렇게 여성혐오 콘텐츠로 놀이하고 있는 남성들과 학교라는 일상 속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김 교수는 “여성혐오가 강화된 세계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생존기술일 수 밖에 없다”며 “페미니즘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자기 방어 기술임을 체감한 세대”라고 정의했다.
  
- 10대부터 꾸밈노동 강요돼…”화장 안 하면 왕따” 

 영 페미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탈(脫) 코르셋’ 운동도 이전 세대보다 ‘꾸밈노동’이라는 억압이 더 가혹하게 강요돼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교적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학교를 다녀 스무살 언저리부터 화장을 시작한 선배 여성들과는 달리, 편의점에서도 10대전용 색조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이들은 자랐다. 아동청소년기임에도 코스메틱 산업의 마케팅 대상이 돼 왔고 또래 집단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으면 ‘루저’ 취급을 받는 분위기에서 이들의 화장은 단순히 아름다워지기 위한 쾌락이 아니다.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 김모(26·여)씨는 “내 피부는 초등학생때부터 화장품에 노출됐다”며 “안경보다는 콘택트렌즈, 맨 입술보다는 틴트, 맨 얼굴보다 바르면 피부톤이 밝아지는 선크림을 바르면서 커 왔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화장을 안 하면 ‘어디 아프냐’, ‘뭐라도 좀 발라라’ 등의 핀잔을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늘상 들어왔다”며 “화장을 하지 않은 날에는 외출하기도 싫고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였다”고 떠올렸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헬스앤뷰티스토어에서 점장으로 일하는 이모(33·여)씨는 “초등학생들도 아이섀도우, 아이라이너를 사용해 화장을 진하게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본다”며 “학부모들은 화장품을 사주기 싫지만 화장을 안하면 왕따를 당한다고까지 하니 어쩔 수 없이 사줘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교복업체가 조사한 ‘청소년 메이크업 실태 파악’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5246명 중 70%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화장을 한 경험이 있거나 하고 있는 ‘유경험자’로 파악됐다. 전체 응답자 중 절반인 51%는 만 13세 이전부터 화장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윤김 교수는 “1020 여성들은 유튜브를 통해서 화장법을 놀이처럼 배웠고 또래 집단 안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화장을 한다고 볼 때 탈코르셋 운동은 30대 이상 여성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선택과 가꿈처럼 보이는 ‘꾸밈’ 행위가 사실은 선택이 아니라 ‘여성은 아름답고 날씬해야 한다’는 굴레라는 것을 알게 된 젊은 여성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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