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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 등,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서 ‘희생자의 삶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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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하연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 등이 제3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희생자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16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오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38주년 기념식이 끝난 뒤 이 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이 김경철·최미애·윤상원·박관현 열사와 이창현 행방불명자 묘역을 유족과 함께 참배한다. 

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와 임산부 사망자 묘역 등을 둘러보며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 

5·18 민주화운동 첫 희생자인 김경철 씨는 어릴 때 추락사고로 인해 청각을 잃었다. 이로 인해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그는 결혼 뒤 자녀를 키우며 행복한 나날을 이어갔다.

국가보훈처 제공 / 뉴시스
국가보훈처 제공 / 뉴시스

1980년 5월18일 그는 서울에서 온 처남을 배웅한 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광주 시내 중심가를 찾았다. 이 과정에 금남로 지하상가 공사현장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혔다. 

장애인증을 보여주며 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계엄군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고, 적십자병원으로 실려간 그는 하루만인 5월19일 숨을 거뒀다. 

김씨는 민주묘지 1묘역 첫번째 묘지에 안장돼 있다. 

5·18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최미애 씨는 5월21일 오후 1시30분께 전남대학교 인근에서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

이 때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이뤄졌으며, 최 씨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친정 어머니가 급하게 달려나갔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뱃속의 아이는 태동이 느껴져 어머니는 급하게 병원에 연락을 취했지만 사고현장으로 달려오는 구급차는 없었다. 

최 씨의 가족들은 숨진 딸의 시신을 손수레에 싣고 장례를 치렀다. 

5·18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5월27일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윤상원 열사는 항쟁 지도부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한 사실을 알고도 도청에 남아 “훗날 역사가 우리를 기억해 줄 것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총탄에 맞아 숨졌다. 

항쟁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는 그해 5월16일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올라 시위의 의미가 담긴 연설을 한 뒤 수배가 내려져 도주 생활을 했다. 

1982년 4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은 그는 50일간의 옥중 단식까지 벌이며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끝내 사망했다. 

지난해 37주기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에 이름이 등장해 그의 삶이 다시 조명됐다.

초등학교 1학년의 나이로 숨진 이창현 군은 38년이 되도록 시신조차 찾지 못한 5·18 행방불명자로 남아있다.
  
1994년 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시신이 없어 민주묘지 행불자 묘역에 묘비만 세웠다.  

제3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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