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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배우 ‘유아인’이 아닌 ‘엄홍식’으로 남긴 장문의 일기는?…‘대단한 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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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양인정 기자) 유아인이 과거 SNS에 게재한 일기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1월 유아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일기를 공개했다. 

게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의 일기 공유

조카들은 내게 가장 두려운 존재들이다. 내 엄마의 손을 자기들 몫으로 당당하게 붙들고 내 영역에 쳐들어와 온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당혹스러운 폭도들이다. 그들은 유럽에서 물 건너온 내 화병을, 장인정신으로 조립한 나의 레고를, 일생을 바쳐 이룩한 인생의 해답들을 간편하게 파괴한다. 삶을 통째로 쏟아부어 쌓아올린 바벨탑이 모래성으로 무너진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란 그런 것이다.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고함을 치거나 체념에 이르는 것은 성가시지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게 가장 두렵고 버거운 것은 말문이 트이고 스스로의 존재를 눈치채기 시작한 순수가 쏟아내는 질문들 앞에서 나 자신을 지탱하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쌓이고 또 쌓일수록 힘겨운 그 일.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내가 깨우친 것이 얼마나 사소한지, 고작 생존의 법칙을 과시하는 것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지를 다 안다는 듯이 그들은 떳떳하게 내놓은 내 모든 답변에 왜냐는 질문으로 꼬리를 물며 무지의 벼랑 끝으로 나를 몰아붙인다. 투니버스로 간신히 그들을 입다물게 하고 기사회생의 한숨을 내쉬는 나의 자화상은 못돼먹은 질문의 기술로 선생들 골탕 먹이기를 즐겨 하던 내 어린 시절의 처참한 최후다.

나 역시 파리채로 맞아가며 배운 언어의 패턴으로 내게 입력되는 거리의 모든 단어들을 여과 없이 질문으로 쏟아내는 무지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애였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왜 그렇게 불려야 하는지 아빠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우리 동네의 ‘만년설’이라는 경양식집 앞에서 그 의미를 파고드는 내 질문에 친절한 대답을 들려주었고 그 순간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다정하고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영화 버닝의 촬영이 이번 주에 끝을 볼 예정이다. 한 달간의 촬영 공백을 앞둔 2017년의 마지막 촬영 날 나는 감독 이창동에게 물었다. 도대체 우리가 좇은 ‘의미’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로 애써 부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찾아내는 것인지. 그는 간단히 답한다.

“의미는, 없어.”

그는 함께 작업을 이루는 내내 줄곧 나의 신이었고, 아버지였고, 스승이었다. 때때로 위태로움을 감추거나 더 크게 드러내며 순간을 버티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런 감각들은 남몰래 품고 나는 줄곧 그의 종으로 편안한 시간을 살았다. 책임을 떠넘기는 삶이란 얼마나 간편한 것인가. 그리고 나는 너무 성급하게 질문했고, 그는 대답했다. 의미는 없다고. 그 순간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른스럽고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내 일은 내가 발견하거나 기어코 느껴낸 어떤 의미를 강요하거나, 아름답다고 주장하거나, 지식이랍시고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식으로 그의 말을 공감했지만 더 이상의 질문을 포기했다. 우리의 폭력적인 관계에 그래도 몇 날이 남아있으므로.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의미를 알았던 적이 없다. 나의 가치를 주장하던, 그것으로 연명하던 삶의 모든 순간들은 요란한 자위일 뿐이다. 나는 더 새롭게, 더 강하게, 더 처절하게 움직이며 자위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의미를 찾거나 세상의 의미에 닿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추구하겠다고 또다시 작심한다. 그래야 내일도 살아있을 테니까.

인간의 가치를 묻는 일. 우리의 위치를 찾는 일. 우리의 모양을 함께 만드는 일. 나는 그것이 내 일이라고 믿었지만 단 한 번도 내 소명에 떳떳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지난 나를 버리고 모든 오늘에 나를 던질 테지만 더 이상 무지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떼쓰지는 않을것이다. 애써봐야 소용없다. 그리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얼마나 더 크게 깨우쳐야 하는가. 얼마나 더 비참하게 실패할 것인가.

모른다. 모르겠다. 내 조카들이 계속 내게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그 애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오래 그들의 질문을 끌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대가리에 피가 말라도 함께 놀고 싶어 할 만큼 쿨한 삼촌이었으면 좋겠고, 그 애들의 마음에 피가 계속 돌 수 있게 애써 줄 수 있는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희망하며 그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무모한 아재로 늙어간다. 무지의 벼랑 너머에 미지의 세계가 있다면 그들은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렇게 여기며 일단은 그들을 멀리 물리는 것이 속 편한 죄 많은 인간으로 살아간다.

답이 없는 연습과 실험을 보류하는 인생들. 등떠밀려 답안을 써내리고 집단으로 달려들어 남의 삶을 채점하는 세상. 너덜너덜한 답안지들.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검색 사이트 사용법 따위. 저마다 자기가 정답인 인간들. 부정하고 틈 많은 어른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검은 속살을 파헤치겠다며 시건방 떨기 좋아하던 나는 이제 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나도 찾지 못한 대답을 들려줘야 할 구세대의 시절로 접어들고 있다.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기는커녕 질문에 떨고 질문을 화형 하는 세상에서 내가 꾸는 꿈이란 얼마나 무모한가. 그러한 인간을 양산하는 질서 안에서 나를 떨게 하는 자들과 산 채로 함께하는 일이 도무지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망측한 답변들을 늘어놓을 댓글을 기다리며 나는 왜 나를 너에게 보내는가. 그래도 ‘꿈’꾸고 ‘삶’이 지속되기를.

내가 나의 일로 세상의 건너편에 존재하지 않기를. 내가 소중한 나의 관객들을 소비자로 몰아 척을 지지 않기를. 시장통에 탑을 쌓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자위하지 않기를. 당신들과 동지 삼아 세상을 묻고 더 나은 내일을 열 수 있기를. 일단은 부디 이 한파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기를. ^^

끝.

특히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심오한 문장들은 읽는 재미를 더했다. 

유아인 페이스북 프로필 이미지
유아인 페이스북 프로필 이미지

이에 한 네티즌은 “드디어 마지막. 매우 그리운 현장이 될 것 같네요.”라고 댓글을 남겼다. 이에 유아인은 “너덜너덜. 흑흑. 큭큭^^ 응원 고마워요!”라고 답변을 남겼다. 

5월 2일 현재 기준 해당 게시물의 좋아요수는 1만 6천 여개에 달한다.

유아인은 1986년생으로 올해 33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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