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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최영미 시인, 고은 시인 성추행 폭로 “괴물 비호하는 문학인들 때문에 쓴다” #미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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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장은진 기자) 최영미 시인(57)이 지난 17일 자신의 SNS에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고 한 고은(85)의 성추행 사건 정황을 밝히며 화제가 되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최 시인은 27일 동아일보에 직접 작성한 약 1000자 분량의 글을 보냈다. 그는 ‘그때’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상세히 적었으며 “반성은 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고 이유를 밝혔다.

최 시인에 따르면 사건은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일어났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의 한 술집이었다. 문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한다.

그는 선후배 문인과 술자리에 참석했다. 그때 ‘원로시인 En(고은)’이 들어왔다. 그가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만졌다. 잠시 후 그는 최 시인과 다른 젊은 여성시인을 향해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하지만 동석한 문인 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집에 일행 말고 다른 손님도 있었지만 함께한 남성 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최 시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최 시인은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 침묵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비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라고 반문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17일에 일부 매체에서 자신의 인터뷰 내용을 왜곡 보도한 것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바로잡기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하기도 했다.

 

최영미 시인 페이스북
최영미 시인 페이스북

 

“최영미는 수십명에게 성추행 당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해당 글을 시작한 그는 “제 명예를 훼손하는 잘못된 기사 제목을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잘못된 헤드라인을 게재한 기사들에 정정을 요청했다.

이어 그는 “1992년 등단 이후 제가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 (성추행)을 했던 남자는 네 명입니다”라고 정확한 사실을 전했다.

또한 “문단 카르텔 속에서 여성문인이 당하는 피해를 쉽게 설명하려 한 예를 들었을 뿐, 제가 방송 인터뷰에서 문단 내 성폭력과 보복이 진행되는 과정 전체를 일반화한 건 아닙니다”라고 설명했다.

‘괴물’이 실린 후 모 신문사에서 전화가 와 ‘괴물’에 대해 물었으나 겁이 나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밝힌 최 시인은 “괴물과 괴물을 키운 문단권력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들을 건드려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데...일부러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지요”라며 문단 내 권력자들에 대한 여성문인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리고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에서야 그는 “문단 내 성폭력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겪은 슬픔과 좌절을 젊은 여성문인들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며 저는 방송에 나갔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최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이 구시대의 유물로 남기를 바라며, 저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더 많은 여성들이 #Metoo 를 외치면,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요”라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최 시인 자신이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용기를 낸 것처럼 다른 피해자들도 이 미투 바람에 영향과 힘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투운동이 열기를 띄며 고은을 비롯해 문학계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간 쉬쉬하던 성범죄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수십 년을 이어온 이러한 추태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비단 가해자 본인의 권력 뿐만이 아니라 그를 옆에서 동조하고 묵인하던 수많은 방관자·동조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현재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비난보다는 피해자의 사실 검증에 치중하도록 분위기를 변질시킨다.

미투 열풍 중에도 ‘사실이 맞냐, 맞다면 실명을 밝히고 얘기해라, 굳이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의도가 뭐냐’와 같은 글들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순백의 피해자’ 찾기는 그만둬야 한다. 피해자는 실명을 밝히길 두려워 할 수도 있고 수십 년 후에야 피해 사실을 알릴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에게도 과실이나 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에서 피해자는 온전히 피해자로만 다뤄져야하며 그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우선시 돼야 한다.

사상 검증과도 같은 2차 가해가 미투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 최영미 시인의 말처럼 더 많은 여성들이 미투를 외치며 세상이 변하길 기대해 본다.

이하 최영미 시인 원고 전문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시인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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