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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성추행 사건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미투…"생식기가 손에 닿을 때도"
  • 김명수 기자
  • 승인 2018.02.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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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기자] 이윤택 성추행 폭로 사건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연극계의 미투 글이 또 나왔다.

이번엔 이 모씨의 사례다.

이 모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15일 1년 전 글을 다시 인용하며 연극계 성추행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한때 극단에 몸 담았다는 이 모씨는 용기내어 폭로했던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과거의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이 모씨는 연극계의 대부였던 이윤택 씨를 직접 안마해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공개했다.

이 모씨가 폭로한 글 전문은 기사 하단에 공개하며, 성추행 관련 부분만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꽤 나이가 있었던 그 분께선 낮에 쌓였던 피로 때문인지 밤이 되면 안마를 요구했다. 때때로 난 그 요구에 불려 갔고, 그리하여 컴컴한 방에서 어쩔 땐 다른 이와, 어쩔 땐 홀로 1시간 가량 안마를 했다. 요구 부위가 상체에서 끝날 때도 있었고, 하체 부위를 해야할 때도 있었다. 생식기 주변을 눌러줘야 몸이 풀린다기에 ‘본의 아니게’ 그의 생식기가 손에 닿을 때도 있었다. 짧을 땐 1-2분, 길 때는 10분 정도.
안마를 해야 하는 시간은 불규칙했다. 어느땐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심할 땐 새벽 3-4시 중간에 깨야 할 때도 있었다. 으레 그럴 때면 나보다 집단에 더 오래 계셨던 분들이 나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오너의 안마를 좀 네가 해줘야겠다면서. 안마를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말을 하는 그들의 눈빛에 깃들어 있던 미안함을 넘어선 미안함, 그것을 난 놓치지 않았으니까. 때로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불려갈 때면 내 마음속에 찾아왔던 안도감, 그 부끄러움 또한 난 잊지 않고 있다. 아니,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러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 집단에 있는 동안 내가 오너의 안마를 했던 횟수는 아마 50회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모씨는 이미 지난해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와 같은 성추행 사실을 공개한 바 있었으며, 이번에 연극계 성추행 사실이 대거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과거 사실을 언급하며 미투에 참여했다.

이 모씨가 적었던 것처럼 당시엔 이와 같은 문제들이 묻혔고, 이번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문제의 연출가가 누구인가 하는 부분까지 모두 공개됐다.

밀양연극촌 이윤택 대표 / 사진=뉴시스
밀양연극촌 이윤택 대표 / 사진=뉴시스

이윤택 씨는 연극을 내려놓겠다는 정도로 사과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어서 이와 같은 미투 운동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선 2차피해를 막기 위해 실명과 링크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하는 지난 15일 이 모씨가 올린 글 전문이다.

생각과 생각 끝에, 1년 전 이 공간에 올렸던 글을 다시금 공개합니다.
한때 극단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저 또한 마음이 복잡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 전 그때처럼, 저의 말들을 포함한, 사건과 관련된 모든 말들은 반드시 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겼다면, 그 일들이 당사자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게 상처로 자리잡았다면, 그리고 그 일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시스템, 위계를 이용해 일어났다면 그 관련된 모든 것들을 돌아보게끔 하는 공개적인 발언은 매우 필요하며,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연희단거리패는 현재의 이 시점에서 일어나는 발언들을 매우 주의 깊게 들어야 하며, 집단의 입장에서 그에 맞는 공적 대처를 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넓게, 깊게, 그리고 지금 드러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본인의 가족에게 일어났다면 어떤 대처를 상대에게 요구하실지를 한번 더 생각해보시고, 현명한 입장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우릴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길.
용기내어 발화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하는 이 모씨가 지난 2017년 3월 1일 올렸던 글의 전문이다.

이렇게 쓰기까지 조금은 어렵고, 상당히 오래 걸렸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언젠가 한 집단에 있었다. 그 집단은 그 집단이 속한 영역에서 최고 수준을 구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었고, 난 내가 그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자랑스러워 할 만한 사람들과 자랑스러운 배움을 지속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워 할 만한 산출물을 내 눈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 숙식을 함께 한다는 다소 특수한 생활방식에서 오는 어려움도 그 자부심 하나로 견딜 수 있었다. 아니, 그런 어려움들이 오히려 나의 자부심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고.

그러나 결단코 자랑스럽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특히나 밤이 내겐 가장 거슬리는 시간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오너의 콜링 때문이었다. 꽤 나이가 있었던 그 분께선 낮에 쌓였던 피로 때문인지 밤이 되면 안마를 요구했다. 때때로 난 그 요구에 불려 갔고, 그리하여 컴컴한 방에서 어쩔 땐 다른 이와, 어쩔 땐 홀로 1시간 가량 안마를 했다. 요구 부위가 상체에서 끝날 때도 있었고, 하체 부위를 해야할 때도 있었다. 생식기 주변을 눌러줘야 몸이 풀린다기에 ‘본의 아니게’ 그의 생식기가 손에 닿을 때도 있었다. 짧을 땐 1-2분, 길 때는 10분 정도.
안마를 해야 하는 시간은 불규칙했다. 어느땐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심할 땐 새벽 3-4시 중간에 깨야 할 때도 있었다. 으레 그럴 때면 나보다 집단에 더 오래 계셨던 분들이 나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오너의 안마를 좀 네가 해줘야겠다면서. 안마를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말을 하는 그들의 눈빛에 깃들어 있던 미안함을 넘어선 미안함, 그것을 난 놓치지 않았으니까. 때로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불려갈 때면 내 마음속에 찾아왔던 안도감, 그 부끄러움 또한 난 잊지 않고 있다. 아니,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러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 집단에 있는 동안 내가 오너의 안마를 했던 횟수는 아마 50회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몇 단락을 꺼내어 놓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그 망설임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재작년까지 이 사건을 얘기하지 못했던 건, 오너와의 접촉이 나로선 그리 치욕스럽거나 극심한 불쾌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겐 그저 늙은 살덩이였고, 그 몸과의 접촉은 (성긴 비유를 하자면) 내겐 소나 돼지의 몸을 만지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이러한 내 입장을 일종의 방어막이라 여길 이들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그 사건과 내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봤던 인물로서, 아무래도 그렇진 않다. 내가 좀 특이한 인간이라 그럴지도.
- 작년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소위 ‘xx계 내 성폭력’ 이슈가 뜨거울 시점에 이 얘기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겪은 이 일이 나에게 있어 과연 ‘성폭력’ 혹은 ‘성희롱’ 등의 단어로 규정지어질 만한 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여성들 말고도 남성들도 안마에 불려 갔다. 그러나 난 남성들 또한 오너의 중요 부위를 건드려야 했는지, 그들은 불쾌감을 느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또한 나의 입장에서 오너의 행동은 불쾌감을 일으킨 ‘폭력’이 아니었기에, 같은 이슈 속에 이 일을 말해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다. 때론 오너의 요구로 인해 반발하고 집단을 탈퇴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이 아닌 이상, ‘성폭력’이라는 말로 이 일을 거론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서야 이 일을 공적인 공간에 게재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나 자신이 그 일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부채의식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라는 한 개인으로서 그 일련의 일들은 충분히 잊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들을 겪은 누군가에겐 잊혀질 수 없는 치욕이자 트라우마, 그리고 좌시할 수 없는 ‘폭력’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 아픔이었다고, 치욕이자 부끄러움이었다고 말하고픈 이들― 그러나 쉽사리 용기가 없었던 이들에게 나의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족쇄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과 두려움, 미안함.. 그러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 말들을 꺼내게 되었다.

이 글이 이대로 묻힐지, 아니면 당신들의 손으로 멀리까지 전해질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을 겪은 자, 곧 그 일이 ‘성폭력’이라 여기는, 소위 ‘당사자’에게까지 다다른다면 그 이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고통에 대해 말해도 된다고, 그대에게 용기가 없다면 난 언제든지 당신과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직접 만나서 하고 싶다고.

이상, 오랜만의 긴 글을 마친다.

이 모씨가 지난해 3월 1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글
이 모씨가 지난해 3월 1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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