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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대표 추 모씨도 이윤택 성추행 폭로…"성기를 만지게 했다. 입으로 하라고 강요"

  • 김명수 기자
  • 승인 2018.02.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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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기자] 김수희 대표의 폭로에 이어 한 극단의 대표인 추 모씨가 연출가 이윤택 씨의 성추행을 폭로한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추 모씨는 지난 2000년 연극을 배우던 '밀양연극촌'에서 연출가 이윤택 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게재했다.

추 모씨는 차량내에서 앞에 선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샘은 내게 안마를 요구 하셨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다. 입으로 하라고 자꾸 힘으로 날 끌었다"라며 폭로했다.

지옥같은 생활의 연속이었으나 세상물정을 모르는 추 모씨는 "그곳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배우로 서지 못할 것"이라는 이윤택 씨의 말에 매일 밤 안마를 했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밀양연극촌 성벽극장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재개관 기념행사에 참가한 이윤택 이사장. 2017.05.13. / 사진=뉴시스
경남 밀양시 부북면 밀양연극촌 성벽극장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재개관 기념행사에 참가한 이윤택 이사장. 2017.05.13. / 사진=뉴시스

추 모씨는 극단을 그만 두고서야, 시궁창에서 버틴 세월로 인해 치료를 받아야 했고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고 덧붙였다.

추 모씨는 사과를 받고 싶어한다. 또한 그가 대본을 보고 있던 시간에 성추행을 경험했어야 할 후배들에게 사과한다고 고백했다.

이윤택 씨는 사건이 불거지고 난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사과하지는 않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밀양연극촌 대표와,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영산대학교 CT대학장 등을 모두 내려놓을것인지, 무엇보다 피해자에게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인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추 모씨의 이윤택 성추행 폭로글 / 페이스북
추 모씨의 이윤택 성추행 폭로글 / 페이스북

* 추 모씨의 글과 실명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공개하지 않는다.

이윤택 씨는 밀양연극촌의 대표이자 연희단거리패의 예술감독으로 공개돼 있다.

밀양연극촌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대표로 기재돼 있고, 연희단거리패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예술감독으로 기재돼 있다.

가마골소극장은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이윤택 연출이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공지했다.

가마골소극장입니다.

이윤택 연출가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가마골소극장은 송구스러운 마음 감출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 뿐 아니라, 관객여러분과 부산의 연극인들 모두에게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이윤택 연출은 가마골소극장 연출 일선에서 모두 물러났습니다.

다만 현재 공연 중인 <영도다리 난간밑에 이야기꾼이 산다>는 원로배우 원희옥 선생님 헌정공연으로, 끝까지 공연하기로 하였습니다.

젊은 세대가 이끌어왔던 가마골소극장이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가마골소극장 대표 조인곤 외 일동

연희단거리패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을 대신 게재했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연희단거리패는 이윤택 연출가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죄송하단 말씀 먼저 드립니다. 연희단거리패 선배 단원들은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극단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다는 점에서 극단의 선배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번 사태에 대해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피해 당사자 분들께 사죄 드립니다.
동시대 함께 연극을 하고 계시는 연극인 여러분께도 사과 드립니다.
연극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믿고 저희를 아껴주신 관객 여러분께도 머리숙여 사과 드립니다.

이윤택 연출은 연희단거리패, 밀양연극촌, 30스튜디오의 예술감독직에서 모두 물러났습니다. 앞으로 연희단거리패는 부끄럽지 않은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자숙의 시간을 갖고 연극인들과 관객분들께 새롭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겠습니다.

2018년 2월 15일

극단 연희단거리패 대표 김소희 외 일동 올림

그러나 이윤택 연출이 대표로 있는 밀양연극촌은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개 사과를 아직 하지 않고 있다.

다음은 김수희 연출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이윤택 연출의 성추행 폭로글이다.

#metoo

10년도 전의 일이다.
극단일이 워낙 많고 힘들다 보니 버티는 동기가 거의 없었고 내가 중간선배쯤 되었을 때다. 오구 지방공연에 전 부치는 아낙으로 캐스팅이 됐다.
주로 사무실에서 기획 업무를 많이 했지만 공연이 많다보니 나같이 연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작품에 투입이 됐었다.
여관방을 배정받고 후배들과 같이 짐을 푸는데 여관방 인터폰이 울렸다. 밤이었다.
내가 받았고 전화 건 이는 연출이었다. 자기 방 호수를 말하며 지금 오라고 했다.
왜 부르는지 단박에 알았다. 안마를 하러 오라는 것이다.
그는 연습 중이던 휴식 중이던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게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업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안 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중략-언론중재위원회 권고(의결번호 제2018-463호)에 의해 삭제함]

그의 방에 들어와 처음 했던 말이었던 거 같다. 나는 방을 나왔고 지방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밀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도 한, 두 편의 작업을 더 하고 극단을 나왔다. 정해진 일정이었고 갑자기 빠질 수 없어서였다.
대학로 골목에서, 국립극단 마당에서 그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나는 도망 다녔다.
무섭고 끔찍했다.
그가 연극계선배로 무엇을 대표해서 발언할 때마다, 멋진 작업을 만들어냈다는 극찬의 기사들을 대할 때마다 구역질이 일었지만 피하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 그 연출이 국립극단 작업 중 여배우를 성추행했고 국립 작업을 못하는 벌 정도에서 조용히 정리가 되었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여전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많이 고민하다 글을 쓰기로 했다. 쓰는 내도록 온 몸이 떨려온다. 하루 자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선배쯤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수희 대표의 폭로로 또 다른 김 모씨의 폭로도 이어졌다.

김 모씨는 2012년 일을 폭로했는데, 연희단과 합숙하며 공연을 연습하던 시절의 일로, 공연 리허설 중 무대 뒤에서 연출과 만났는데 "발성에 대해 지적을 하며 소리를 잘 내려면 이곳으로 부터 소리가 터져나와야 한다며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가슴을 만지면서 그것을 마치 대단한 것을 알려주는냥 포장했다"라고 폭로했다.

다음은 김 모씨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게시글 전문이다.

2012년 여름. 연극촌에서 연습중이던 코마치후덴이라는 작품의 객원배우로 연희단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나는 주인공인 늙은 노파의 젊은 시절 여인의 역할을 맡았고 합숙을 하며 공연을 연습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연습을 하는데 매우 당황스러웠던 일화가 있다.

나는 객원으로 이 작품 들어갈때 노출조항에 싸인을 하거나 동의 한적이 없는데 연습도중 무용으로 정사장면을 표현하는 씬에서 내가 옷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지 않는다며 갑자기 리허설중인 무대로 연출이 뛰어 올라왔고, 내 옷깃을 잡고 옷을 어깨아래로 확 까뒤집어 내렸다. (기모노 특성상 그렇게 옷을 어깨를 까뒤집어 내리면 옷이 다 벗겨지는 구조임)

당시 의상 안에 서포터를 입고 있었는데 그걸 안에 입고 있다고 혼이 났다. 그런데 내가 만약 그 서포터를 안입었다면 나는 벌건 대낮에 야외와 연결된 극장에서 남자배우들도 다 보는 앞에서 상반신을 홀랑 벗겨질뻔했다. 그나마 서포터를 입었기에 노출을 면할 수 있었다. 당시 연습을 주관하시던 극단의 다른 선생님께서 서포터 입어도 된다고, 노출 없다고 하셨는데 연출이 갑자기 옷을 벗겨서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작품은 내용이 꽤 추상적이고 어려운 편이었고, 대극장에서 연극을 한다는것은 발성부분에서도 배우의 테크닉이 매우 중요했기에 이 작품의 연출가는 나의 대극장 발성에 대해 매우 지적을 많이 했고, 따로 특훈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공연 당일 극장에서 빨간색 기모노를 갖춰입고 리허설중일때 마지막 점검을 하겠다며 무대뒤에서 연출과 만났다. 계속 나의 발성에 대해 지적을 하며 소리를 잘 내려면 이곳으로 부터 소리가 터져나와야 한다며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가슴을 만지면서 그것을 마치 대단한 것을 알려주는냥 포장했다. 아니 그렇게 바쁘고 한참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공연 직전에도 그럴 정신이 있는건지. 여배우의 몸에 남자연출이, 그것도 공연 전에 어디 의상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는 말인가. 공연 전 너무나 정신이 없는 상황이고 당황스러운것도 있으나 공연을 잘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불쾌함을 애써 눌러 감추고 무대에 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이후 스트린드베리의 서거 100주년 기념공연이었던 꿈의 연극을 연습하던 당시의 일이다. 보통 그 극단의 배우들은 연극촌을 중심으로 생활하나 도요 라는 작은 시골마을에도 그 집단의 배우숙소와 출판사, 그리고 작은 소극장이 있다.

꿈을 연습할 당시 집중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아주 소수의 인원만 (열명도 안되는?) 데리고 연극촌에서 연습을 마치면 그들과 함께 한시간 거리 쯤 되는 도요마을로 들어가 숙소 생활을 했다. 마을버스가 하루에 몇번 다니지도 않는 깡촌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도 그 인원속에 있었다.

연극촌으로 연습을 가지 않을때면 도요의 연극스튜디오에 모여 따로 연습을 했는데 이것은 끔찍하게도 이곳의 수장인 연출가와 1:1개인레슨을 의미했다. 한적한 시골마을. 몇이 안되는 극단 단원들은 자신의 연습 순서를 기다리며 밖에서 대기하고, 그리고 나는 연출가와 단둘이 극장안에. 그리고 문은 굳게 닫혔다. 연습을 빌미로, 나를 특별히 아껴 연습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뒤에서 껴안고,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발성을 하는 위치라며 짚어주던 더러운 친절함. 그래놓고 자기가 이렇게 가르쳐 줬다는걸 고인이 되신 선생님이나 극단 대표에게 말하지 말라는건 무엇때문신지?

그 작품은 주연을 맡은 여배우가 엔딩씬에 옷을 다 벗고 퇴장하며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고, 제대로 옷을 시원하게 벗고 들어가지 않는다며 마이크에 대고 그 여배우를 향해 쌍욕을 해대는걸 보면서 나는 필히 이 곳을 떠나리라 마음 먹었었다.

또한 꿈을 연습하던 도중 자신이 원하는 연기가 안된다며 갑자기 무대위로 뛰어올라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머리채를 잡고 쥐어흔들고, 물론 연출가가 원하는 것을 못한 내탓도 있지만 그 모두의 앞에서 머리채까지 잡혀가며 연기하는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공포와 수치였다.

무대에 서는것이 너무나 두려웠고, 도망치고 싶었고. 연기라는것이 너무나 하기 싫었다. 내가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일을 이렇게 고통 받으며 해야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연극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의 연극이 마무리 지으면 다음 작품 오구에 투입 될 예정이었고, 오구의 무녀로 연습을 하던 상황이었으나 나는 악화된 건강을 빌미로 꿈의 연극을 마무리 지은 후 오구에서 하차하고 극단에서도 나왔다. 아니 도망쳤다는 말이 맞겠다. 짐을 미리 집으로 다 보내버리고, 연극촌에 계시던분들께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버렸으니...

며칠이 지나고 난 어느날.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서 어쩌면 그렇게 개념이 없냐고, 한솥밥 먹던 사이인데 인사도 없이 나갈수가 있냐고 그렇게 살지말라고 하시기에...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으나... 무엇보다 내가 성추행의 피해자라는 점, 그래서 스스로를 더 자책하고 수치스러움에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었다는것.. 또한 그 극단의 모두가 어쩌면 한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입을 닫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객원으로 들어가 고작 4개월간 2편의 작품에 참여하고 한편을 연습중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내게 연기하는 즐거움과 연극하는 행복이란 없었다. 극단의 정단원으로 들어오라는 제의도 무섭기만 했다. 정단원으로 들어가면 도대체 무슨일이 더 벌어질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으니까. 함께 생활했던 또래의, 혹은 나보다 어린 단원들과 조금 친해지기도 했고, 좋은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곳을 나오면서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아니 안부연락 조차도 무시했다. 완전히 인연을 끊어내고 싶은 마음이 컷던것도 있고, 그때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한달이상을 집밖이 아닌 내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당시 어머니께서는 모 방송사에 제보전화까지 하셨더랬다. 그런데도 별 반응도, 공론화 되는 일도 없었다. 당시에는 너무나 저명한 연출이고 증거또한 없으니 이 일이 커지지 않았던 것이겠지. 우리 어머니께서는 나를 그곳에 보낸일을 내내 가슴치며 후회하신다.

그 이후에도 너무 속이 타들어가 그 극단에서 나오신 그곳 출신의 선생님께 술한잔을 하며 그때의 일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이 왜 그 이야기를 극단에 있는 대표나 선배들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이쌤이 아직도 그러시느냐고 하는데..... 내가 “그분들께 연습에서 내가 이렇게 너를 가르쳤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그냥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하루하루가 도망치고 싶은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그 선생님도 알고 계셨던거다. 공공연히 그런일이 일어났었고, 어떤식으로든 그것이 조용히 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 김수희 연출이 10년전의 일이라고 밝혔는데 나는 2012년의 일이니 더 최근이라고 할수 있겠다. 10년전의 일뿐 아니라 그 전과 후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보는것은 .... 이런 나를 여전히 지지해 주고 아껴주는 그리고 내 상처까지 보듬어주는 남편이 있음으로 인해 입을 열 수 있었다는 것과, 이런 목소리를 이제야 내는 미안함과, 조용히 사건이 덮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많은 이들이 존경해 마지않는다며 오르내리던 그 이름. 너무나 구역질 나고 역겹다. 누군가를 짓밟고 만들어 지는것이 예술이라면 나는 그런 예술따윈 안하련다.

기분나쁠때 밥 상 차려다 앞에 갖다 놓으니 뒤집어 엎으면서 고래고래 소릴 질러대고, 그걸 주워담고 새 밥상 내어 오는 그곳 단원들 모습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가 여기서 그런 취급 받느니 가족들에게 돌아가 한번이라도 내 부모님께 따뜻한 밥상 차려드리는게 낫다고.....

여기는 공산주의라고. 니들하고싶은대로 하는것이 아니라고 하셨던가. 밀양 연극촌이라는 공산주의 왕국 안에서 제왕처럼 혹은 신처럼 떠받들어 지며 군림하는 연출가의 추악한 본색은 바로 이런거다.

공산주의 국가 수장은 꽃다운 청춘들 데리고 하지마시고 당신 추종자들과 가족들 데리고나 하시길.

#미투 #metoo #미투운동 #여태안밝혀진추악한모습다드러나길 #자숙같은소리하지말고연극계를떠나라 #거장이라불리던사람

다음은 추 모씨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게시글 전문이다.

2000년에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보단 극단에서 차근차근 배우고 싶었다.
밥 먹고 자고 연극만 하던 밀양은 내게 천국 같았다.
무작정 짐을 싸서 그곳에 들어갔다.

연극을 전혀 모르던 나는 무대를 만들고 극장을 만드는 그런 노가다 조차 얼마나 신이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후 회식 자리가 있었다.
밤에 숙소로 돌아가는 차량을 지정할때
이샘은 내게 함께 타자 하셨고 그 차에 탔다.
그 차엔 운전하는 선배와 나와 이샘이 탔는데

[중략-언론중재위원회 권고(의결번호 제2018-463호)에 의해 삭제함]

그 힘이 너무나 쌨고 무서웠고 앞에 운전하던 선배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
그후에 극단생활은 지옥 속이었다.
이샘은 늘 나를 찾았고 난 괴로웠으며 아팠다.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묻고 싶을것이다.
왜 나오지 않고 버텼는지 묻고 싶을것이다.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내게 그곳은 큰성 같았고
덤빌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으며
또 그곳이 아니면 넌 어디에서도 배우로 서지 못할거라던 이샘에 말이 가슴에 콕 박혀 있었다.
난 밤마다 안마를 했다.

하지만 괴로웠어도 우리가 만드는 작업은 행복했다.
이샘은 무서운 독재자였지만 큰작품을 만들었고
늘 많은 단원과 다양한 작업을 했다.
그래서 난 버텼다.그렇게 난 7년의 시간을 보냈다.
늘 괴롭고 고통스러웠어도 함께하는 이들과 버텼다.
난 어느새 선배가 되었다.
난 누군가를 새벽에 깨우는 사람이 되었다.

난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내가 밤에 대본을 한번 더 볼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때 누군가는 나처럼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후 나는 집안 일때문에 극단을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더 큰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 안에서 작품만 보며 버텼던 내가..
우물안에서 벗어나보니 내가 어떤 시궁창에서 이 악물고 버티고 있었는지 또 내 마음을 얼마나 돌보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치료를 받았고. . 매일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이번에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
내 마음 깊숙히 숨겨둔 비밀을 다시 꺼내어
되록이면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난 지금 좋은 남자 만나서 이쁜아들 낳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혹여 용기를 내라고 응원해준 내 신랑에게 내 과거의 이야기가 피해가 될까 걱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고 싶고

또 누군가에겐. . . .

머리숙여 정중히 사과 하고 싶다.

& 먼저 용기낸 선배님 후배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직도 상처를 안고 살고 있을
동료들에게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연극계는 물론 최영미 시인이 폭로한 것처럼 문단 내에서도 미투운동을 통해 연일 성추행 사건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으나, 도종환 문체부장관은 이와 관련해 아직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관련 부처의 장관으로서의 태도가 부적절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비록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이어서 문체부 장관으로서 올림픽 관련 일정들도 중요하겠으나, 평화를 이야기하는 올림픽 이전에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 당하는 성추행 사건에 대해 관계 부처 장관으로서 침묵하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가 이처럼 강력한 파급력을 가지며 문단과 연극계로까지 확대되고 있어 미투운동의 불길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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