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김지웅 기자)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저주받은 화가 일리야 레핀에 대해 방송됐다.
27일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그림의 모델이 되면 사망하게 된다는 저주받은 소문이 퍼진 화가 일리야 레핀에 대해 방송됐다.
1888년 러시아, 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 남자가 갑작스럽게 화제됐다. 뜻 밖에도 그 모습이 어떤 그림 속 남자의 모습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해당 그림은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인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이라는 그림인데, 일리야 레핀은 19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거장이자 러시아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일리야 레핀은 작품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을 1885년 공개했는데, 3년 뒤인 1888년 투신자살을 시도한 남자의 모습이 그의 그림 속 남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화제가 됐다.
사망한 남자는 33세의 소설가 프세볼로트 가르신이라는 인물인데, 당시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과 피를 흘리는 위치까지 그림 속 왕세자와 일치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림을 그린 일리야 레핀의 저주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일리야 레핀은 그림과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있었는데, 1881년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알렉세이 피셈스키의 초상화를 그린 후 며칠 뒤 알렉세이 피셈스키가 59세의 나이로 급사한 것이다.
또한 그로부터 한달 뒤인 1881년 3월, 일리야 레핀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오페라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
당시 모데스트는 42세의 나이로 알코올 중독 증세를 앓고 있어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일리야 레핀이 초상화를 완성 시킨 후 23일 뒤 갑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메다 사망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얼마 뒤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의 유명한 외과의사인 니콜라이 피로고프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니콜라이 피로고프 역시도 그 해 11월 5일 사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일리야 레핀이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 잇따라 사망한 3명의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 사이에선 그가 그림을 그리면 모델이 된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망한 소설가 프세볼로트 가르신 역시 일리야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에서 죽은 왕세자의 모델 역할로 포즈를 취한 직후 사망한 것이었다.
특히 1901년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 정부의 의뢰로 니콜라이 2세 왕과 정관계 인사들이 국무회의를 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1903년 완성시켰다.
그런데 그림이 완성된 얼마 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그림 속 모델이 됐던 장관들이 대부분 화를 입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정말 일리야 레핀의 그림 모델이 되면 불운이 찾아온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일리야 레핀은 1930년 핀란드 쿠오칼라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저주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예술가로 인정받아 그가 노년을 보낸 쿠오칼라는 그의 이름을 따 레피노로 지명을 바꾸기도 했다.
한편,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40분에 방송된다.
27일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그림의 모델이 되면 사망하게 된다는 저주받은 소문이 퍼진 화가 일리야 레핀에 대해 방송됐다.
1888년 러시아, 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 남자가 갑작스럽게 화제됐다. 뜻 밖에도 그 모습이 어떤 그림 속 남자의 모습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해당 그림은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인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이라는 그림인데, 일리야 레핀은 19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거장이자 러시아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일리야 레핀은 작품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을 1885년 공개했는데, 3년 뒤인 1888년 투신자살을 시도한 남자의 모습이 그의 그림 속 남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화제가 됐다.
사망한 남자는 33세의 소설가 프세볼로트 가르신이라는 인물인데, 당시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과 피를 흘리는 위치까지 그림 속 왕세자와 일치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림을 그린 일리야 레핀의 저주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일리야 레핀은 그림과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있었는데, 1881년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알렉세이 피셈스키의 초상화를 그린 후 며칠 뒤 알렉세이 피셈스키가 59세의 나이로 급사한 것이다.
또한 그로부터 한달 뒤인 1881년 3월, 일리야 레핀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오페라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
당시 모데스트는 42세의 나이로 알코올 중독 증세를 앓고 있어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일리야 레핀이 초상화를 완성 시킨 후 23일 뒤 갑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메다 사망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얼마 뒤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의 유명한 외과의사인 니콜라이 피로고프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니콜라이 피로고프 역시도 그 해 11월 5일 사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일리야 레핀이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 잇따라 사망한 3명의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 사이에선 그가 그림을 그리면 모델이 된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망한 소설가 프세볼로트 가르신 역시 일리야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에서 죽은 왕세자의 모델 역할로 포즈를 취한 직후 사망한 것이었다.
특히 1901년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 정부의 의뢰로 니콜라이 2세 왕과 정관계 인사들이 국무회의를 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1903년 완성시켰다.
그런데 그림이 완성된 얼마 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그림 속 모델이 됐던 장관들이 대부분 화를 입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정말 일리야 레핀의 그림 모델이 되면 불운이 찾아온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일리야 레핀은 1930년 핀란드 쿠오칼라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저주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예술가로 인정받아 그가 노년을 보낸 쿠오칼라는 그의 이름을 따 레피노로 지명을 바꾸기도 했다.
<저작권자 © 톱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7/08/27 11:32 송고  |  reporter@topsta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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