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입장] 류승완 감독, 日 고의적 왜곡 “인권유린, 반인륜적행위 분노”
  • 장영권 기자
  • 승인 2017.07.2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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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권 기자] 일본 침략전쟁 당시 수많은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할 인권유린과 더불어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간 곳 ‘군함도(軍艦島)’. 역사적 고증을 통해 영화화한 류승완 감독이 일본의 고의적 왜곡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해왔다.
 
류승완 감독은 “최근 일본 내 일부 매체와 정부 관계자까지 나서서 영화 ‘군함도’가 사실이 아니고 마치 허구로만 이뤄진 창작물인냥 평가받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이와 관련 한,중,일 3국의 정부 기관과 유력 매체들의 날선 공방까지 오가고 있어서, 짧은 생각일지라도 제 의견을 말씀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 펜을 들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최근 일본에서 전해지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전 일본은 아직도 그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와 청산되지 않은 어두운 역사를 마주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라고 전했다.
 
류 감독은 “‘군함도(軍艦島)’는 ‘실제 있었던 역사를 모티브로 해 만들어진 창작물’이라고 제가 얘기한 바 있지만, 일본은 저의 이 발언 중 ‘실제 역사를 모티브로 했다’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창작물’이라는 워딩만 왜곡하여 편의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한 “저는 영화 ‘군함도(軍艦島)’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증언과 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수많은 증언집과 자료집’이 무엇인지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자세히 넣어 두었습니다. 저는 제가 취재한 사실을 기반으로 당시 조선인 강제징용의 참상과 일제의 만행, 그리고 일제에 기생했던 친일파들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다루고자 했습니다. 더불어 영화를 통해서라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맺힌 한을 ‘대탈출’이라는 컨셉으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실제 탈출 시도가 빈번하게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월, 일본 산케이 신문이 ‘군함도는 날조된 영화’라고 보도했을 때도 저는 “조선인이 군함도에서 인권을 유린 당하면서 생활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일본이 어두운 역사까지를 떳떳하게 인정해야 그것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의견을 재차 피력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랬지만, 조선인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의 역사인식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안타깝고 분노가 치밉니다”라고 피력했다.
 
류 감독은 “바라건대 일본측의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인해 ‘군함도(軍艦島)’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의 상처에 또다시 생채기가 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라고 전하며 “아울러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당시 군함도 강제 징용의 어두운 역사를 알리기로 했던 약속 또한 일본측이 반드시 이행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군함도(軍艦島)’ 류승완 감독 / 외유내강, 필름케이
‘군함도(軍艦島)’ 류승완 감독 / 외유내강, 필름케이

‘군함도(軍艦島)’는 어떤 곳인가.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섬의 모양이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軍艦島)’라고 불리며 일본어로는 ‘하시마(端島)’라고 한다. 19세기 후반 미쓰비시 그룹이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이곳을 개발, 탄광 사업을 실시하며 큰 수익을 올렸으나1950~60년대 일본 석탄 업계가 침체되면서 서서히 몰락해 1974년 폐광됐고 현재 무인도로 남아 있다.
 
바로 이 하시마탄광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돼 처참한 인권 유린과 노동력을 수탈당했던 곳이다.
 
‘군함도(軍艦島)’는 일본 침략전쟁 당시 조선인 징용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등 주변국들에겐 침략 피해의 상징이다.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1890년 사들여 해저탄광을 개발했는데, 이 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 탄광이었다. 탄광 안은 좁고 온도가 45도를 넘었고 유독가스가 수시로 분출되기도 하며, 작업 도중 해수가 갱내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는 등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 탓에 ‘감옥섬’, ‘지옥섬’으로 불렸다.
 
하시마 탄광에 조선인이 유입된 것은 1917년경으로 추정되며, 이후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동원된 조선인의 수는 해마다 늘었다. 당시 강제 동원된 수백 명의 조선인들은 비인간적 환경에서 고통을 겪었는데, 특히 외부와도 철저히 격리된 채 하루 12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으로 122명이 숨졌다는 보고서가 있다. 특히 하시마에 동원된 조선인 중 일부는 1945년 8월 인근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시내 복구작업에 투입돼 방사능에 노출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이없게도 일본은 하시마 탄광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일본 근대화를 뒷받침할 탄광"이라며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고, 2015년 7월 5일 하시마섬이 포함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이 결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시마섬 등재 전까지 우리나라는 강제징용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선 안 된다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 한국과 일본은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 의사에 반한 강제노동이 있었음(‘forced to work’)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키로 하고, 이들 시설의 유산 등재에 합의했다. 하지만 등재 이후 바로 일본은 ‘forced to work’라고 말한 것은 강제노동의 의미는 아니라며 입장을 바꿔 논란을 일으켰다.[네이버 지식백과] 하시마탄광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군함도(軍艦島)’ / 구글어스
‘군함도(軍艦島)’ / 구글어스

특히 군함도는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당해 경악할만큼의 인권유린과 더불어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국무총리 산하 기관인"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端島) 탄광 강제 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실태 기초 조사>(2012)에 따르면 1943-45년 사이 약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징용되어 강제 노역을 했다.
 
당시 군함도는 가스 폭발 사고에 노출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좁고 위험한 곳이어서 ‘지옥섬’ 또는 ‘감옥섬’이라  불렸다. 이처럼 노동 환경이 열악한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은 하루 12시간 동안 채굴 작업에 동원되었다.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에 따르면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 중 질병, 영양실조, 익사 등으로 숨진 조선인만 122명(20%)에 이른다.
 
한편, 2015년 7월 5일(현지 시간)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탄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됐다. 그러나 이 유산에는 조선인 5만 7900여 명이 강제 동원됐던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등 7개 시설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됐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일본은 군함도와 관련된  역사를 왜곡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성만을 부각시켜 홍보해 우리 국민의 거센 공분을 샀다.  이에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이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일본에 권고했지만, 일본 측은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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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의 역사인식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안타깝고 분노가 치밉니다 -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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