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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군함도 유네스코 문서에 강제징용 언급 없다…일본 근대화 자랑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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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명수 기자) 영화 군함도(軍艦島)로 인해 군함도에서 일제가 한국인을 노예처럼 부리고 생명도 앗아갔던 사실이 오랫동안 은폐돼 있었다는 사실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 올랐다.
 
역사선생님으로 유명한 최태성 강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군함도(일본명은 하시마 端島) 현지 설명 어디서도 과거 한국인을 징용해 노예처럼 부리고 100여 명 이상이 사망했던 사실은 은폐돼 있다.
 
특히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2015년 등재됐으며 그 기록물에도 일본은 진실을 은폐하고 군함도가 일본의 메이지 산업 혁명의 일환으로 소개돼 있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사실에 분노한 상태.
 
서경덕(43) 성신여대 교수가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광고를 올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발령해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강제 징발한다. 지원병제와 징병제를 이용해 조선 청년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이용하고 국민징용령을 통해 전쟁시설을 건설하고 여성들을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로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지난 7월 3일 중앙일보는 최태성 선생의 강의를 이용해 군함도의 강제 징용자와 관련된 보도를 한 바 있다.
 
“군함도에도 한국인 징용자가 있었다. 한국인이 처음 유입된 건 1917년으로 추정되며 37년 중일전쟁 이후 크게 늘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43년부터 45년 사이 약 800명의 한국인이 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비인간적인 환경에 고통받았다. 해수면 1000m 깊이의 해저 탄광에서 가장 위험한 막장에 배치되기 일쑤였다. 높이가 50~60㎝밖에 안 될 만큼 비좁은 공간에서 누운 자세로 석탄을 캤다고 한다. 섭씨 40도가 넘는 탄광엔 바닷물이 스며들었고 갱내는 가스가 가득 차 폭발 위험도 컸다. 화장실도 없는 공간에서 근로자들은 하루 2교대로 12시간 이상을 일했다. 제대로 된 식사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병에 걸리거나 탄광사고·영양실조로 사망한 이가 많았다. 도망을 시도하다 익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1986년 일본의 시민단체가 발견한 당시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한국인 122명이 사고사·질식사·압사 등의 이유로 사망했다.
(중앙일보 7월 3일자 ‘물밑 1000m 막장서 질식사·압사 … 일본 군함도는 ‘지옥섬’ 그 자체’)”
 
오늘 팩트체크는 2015년 7월 5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 산업 혁명’ 자료에서 군함도와 관련해 일본이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있는지를 체크한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사이트에서는 일본 근대화 관련 기록물 ‘일본 메이지 산업 혁명(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과 관련된 pdf 문서를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이트에 등록된 메이지 산업혁명 문서 첫 페이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이트에 등록된 메이지 산업혁명 문서 첫 페이지
 
3210페이지의 방대한 문서에서 하시마 석탄광산 관련 내용은 6번 나가사키 항목 아래 타카시마 석탄광산 아래에 기재돼 있다.
 
문서 114페이지에 짤막한 설명이 먼저 나온다.
 
“하시마 탄광은 인공적으로 조형된 섬으로 일본 최초의 해저 석탄 채굴 사업(1895년)이며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광업 공동체라고 자랑한다.(Hashima coal mining island, an artificial reclaimed island and site of Japan’s first major undersea coal exploitation (1895) pioneered by Mitsubishi, and one of the world’s most extraordinary mining communities.)”
문서에 소개된 군함도 모습
문서에 소개된 군함도 모습
 
상세한 설명은 문서 132페이지에 또 나온다.
 
“하시마 탄광은 1869년에 소규모로 시작했고 1890년에 미쓰비시에 의해 인수되었으며, 1895년부터는 해저 지층 밑에서 채굴되었다. 석탄 생산량은 1897년 다카시마 광산을 능가했다.
(Hashima Coal Mine began on a small scale in 1869 and was acquired by Mitsubishi in 1890, mining progressively extended beneath the sea bed from 1895. Coal  production surpassed that of Takashima mine by 1897.)”
 
227페이지에 하시마 섬에 대한 설명 내용 중 청일전쟁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1894년에 이르러, 청일 전쟁의 발발은 석탄 수요 급증을 야기시켰고, 하시마에 대한 투자를 촉발시켰다.
(In 1894, the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created a surge in demand for coal and prompted investment at Hashima.)”
 
227페이지 사진 설명 내용에는 왜 하시마섬에 강제징용 노동자가 필요했는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설명이 있다.
 
“하시마 섬 거대한 석탄 해저 퇴적물을 대규모로 채굴하는 것은 계획되었지만, 그러한 대규모 산업 사업을 위한 필요한 석탄 처리와 처리 시설을 제공할 충분한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이 고립된 섬을 채굴하는 것은 탄광의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탄광을 이용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광범위한 숙소를 만들었다.
(Hashima Island. Large-scale mining of extensive coal seams beneath the ocean was planned but there was not enough space to provide the necessary coal handling and processing facilities for such a large industrial undertaking. Additionally, mining on this isolated island necessitated extensive accommodation for thousands of workers, the sub-contracting labour system of Naya-seido, employing miners and their families being commonplace throughout the coal mines of Japan. The answer lay in constructing a massive sea wall encircling a man-made extension of the island made from coal-slack.)”
 
문서 327페이지에는 섬 방문자가 매년 10만 명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문서에서는 하시마 섬의 역사를 다루면서 1931년에 지금의 형태로 섬이 확장됐음을 밝힌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강제징용된 노동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직 일본의 메이지 산업 혁명에서 석탄광산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해저 채굴이라는 극악한 환경에서 강제징용된 노동자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혹사당했던가에 대한 언급 없이 그 결과만을 부풀리고 강조하는 문서다.
 
문서 1680페이지에서 “하시마 섬의 40퍼센트는 광업에 사용되었고 나머지 60퍼센트는 거주 구역에 사용되었다. 사실상, 주택과 직장의 위치는 동일하다. 이 섬은 공동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공동체가 형성되고 공동체가 형성된 공동체와 공동으로 공동체가 형성된 공동체였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이 섬들은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에 대비해야만 했다. 이 단결은 그들의 친족 관계를 더욱 강화시켰다.
문화 행사, 스포츠 경기, 그리고 다른 활발한 공동체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단결심을 키워 주었다. 섬 나라 전체가 유명한 산악 신인 축제와 같은 섬 나라들을 통해 공동체 사회가 되었다.
어떠한 가구도 외부와의 접촉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모든 가족들은 그들의 목욕 정신에 기초한 생활 방식을 이끌어 내기 위해 욕실, 화장실, 부엌, 화장실 등을 공유했다. 원활하게 공유하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이웃과 협상하고 협상을 했다. 이것은 그들을 서로 같은 섬으로 묶어 놓았다. 개인 소유의 주택 소유자들은 아무도 소유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공유되었다. 일하지 않을 때, 섬 주민들은 대부분의 개인적인 삶을 공동체에서 함께 보냈다.
(Forty percent of Hashima Island was used for mining and the other 60 percent was used for living quarters. Practically speaking, the housing and workplace locations were one in the same. The island was a collaborative society with common ties to the region created by a single firm, where the community lived and worked in the same place. Surrounded by the sea, the islanders had to unite against natural disasters such as typhoons. This unity tightened their kinship all the more.
Cultural events, sports competitions, and other active community programs fostered their sense of unity. The entire island became a communal society through islandwide events such as its famous mountain god festival.
No household could lead life without contact with the outside. Whole families shared their baths, toilets, kitchens, and washrooms, leading a lifestyle based on the spirit of give-and-take. To share smoothly, they constantly communicated and negotiated arrangements with their neighbors. This bonded them together into a tribe-like island community. No one had the luxury of personal the company-owned houses: everyone space available was shared. When not working, the islanders spent most of their personal lives together in communal areas.)”
 
하시마 섬에서 노동자들의 삶과 관련해 이렇게 서술하면서 실제 일본인은 관리자로서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노예처럼 노동하며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언급이 없다.
 
미쯔비시 중공업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하시마섬을 인수해 운영한 곳으로 일제와 함께 실질적인 강제노역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시설을 그대로 남기고 공개한 독일은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제사회에서 리더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 반면 과거를 은폐하고 거짓으로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 일본은 독일의 과거청산 및 진실규명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군함도’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근대화라는 이름하에 비참하게 죽어갔던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이 담긴 실화다.
 
일본 메이지 유신 홍보 사이트의 군함도 페이지의 소개 내용에도 역시 강제 징용 사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위키피디아의 군함도 항목에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일본의 강제징용과 관련된 논란이 존재하고 있음이 언급되고 있다.
 
한편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주연 영화 ‘군함도’는 개봉 첫 날 97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개봉한 국내외 영화들의 첫날 흥행 기록을 모두 뛰어넘었다.
 
참고)
중앙일보 보도 기사 ‘물밑 1000m 막장서 질식사·압사 … 일본 군함도는 ‘지옥섬’ 그 자체’
유네스코에 등재된 군함도 관련 페이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메이지 산업혁명 소개 문서 
일본 메이지 유신 홍보 사이트의 군함도 페이지 

위키피디아 군함도 페이지 
한겨레 영문 뉴스
군함도에 실제 강제징용된 최창섭씨 인터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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