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배수정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한국전쟁 장사상륙작전의 성공과 북한군에 잡혀간 소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했다.
23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장성규, 장도현, 장현성이 이야깃꾼으로 가수 폴킴, 솔지, 박효주에게 ‘작전명령 174호, 돌아오지 못한한 소년들’ 사건을 들려줬다.
1950년 8월, 모두가 잠든 새벽에 규호는 커다란 폭발음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고 무엇인가 결심을 하게 됐다. 다음날, 규호의 말을 들은 부모님은 경악을 했는데 하나뿐인 큰아들이 군입대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당시 귀했던 소고기를 들고 왔고 이왕이면 맨 앞에 서서 싸우라고 말하며 아들을 군대에 보내게 됐다. 부산항에는 규호 외에 700명이 넘는 군인들이 모이게 됐는데 이들은 비밀임무를 위해 배 한 척을 끌고 은밀하게 출발했는데 전원 북한 군복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10대 어린 소년 병사들은 전쟁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지만 사실 이들은 정확한 목적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지휘관 이명흠 대위는 소년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출항 이틀 전에 이대위에게 총을 잡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는 학생들을 작전에 투입 시키라는 것이었다.
700여 명의 소년들은 '장사상륙작전'을 하게 됐는데 6.25 전쟁 초반 국군이 낙동강 전선으로 밀린 상황이었던 1950년 9월 15일에 실시하는 인천 상륙적전에 맞춰 북한군을 교란하기 위한 작전으로 서해안의 인천과 정반대 방행인 동해안 포항 북쪽 25km 위치한 경북 장사리 일대 북한군 점령지역에서 전개되는 상륙작전이다.
장사상륙작전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작전 개시 초반부터 난관에 빠졌으나 대대가 겨우 상륙했다. 규호는 아는 형이 자신의 앞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배로 겨우 데리고 왔다.
규호는 북한군의 빗발치는 총알 속에 토치카(적진)을 찾고 없애는 작전을 수행했는데 얼굴에 북한군의 총을 맞았지만 다행히 스치게 됐다. 낙동강 전선 동부의 북한군이 도망을 가면서 12시간 만에 200고지를 차지하면서 승리를 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시신들이 가득했고 당시 19살이던 대환이는 친구 4명과 함께 전쟁터에 왔지만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139명의 전사자와 포로 39명이 발생했다.
다음날, 북한군의 반격이 시작되고 고지에 박격포를 쏘는 가운데 북한군 제2군단의 주 보급로인 7번 국도를 차단하는데 성공하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했다.
200고지에서 기관총이 발사됐고 UN군도 반격을 하며 포탄을 퍼붓게 되면서 불바다가 됐다. 총탄이 빗발치고 포탄이 쏟아지는 바다 위에서 운명이 엇갈리고 구조선에 올라탄 소년들도 있었지만 북한의 박격포가 구조선 중앙으로 날아왔고 팔 다리 잘린 병사가 여기 저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구조선의 문이 닫히고 이대위는 미군 소령을 막으며 남아있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며 애원을 했지만 결국 소년들은 두고 떠나게 됐고 헤엄쳐서 오는 소년들도 구출하지 않고 해변에 남겨져서 떠나가는 배를 보며 통곡을 했다.
대환이는 끝내 배에 타지 못했고 그를 포함해서 30여명이 남게 됐다. 남겨진 소년들은 북한군을 보고 숨었는데 대환의 진구 진목이를 발견하게 됐는데 죽은 줄 알았는데 생존했던 것이었고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 반가워했던 것은 잠시 인민군에 의해 잡혀갔다.
또 남겨진 소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적군의 포로가 되어 북으로 후퇴를 하게 됐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지쳐 쓰러지는 사람은 총알이 아깝다는 이유로 대창으로 찔러 죽였고 대환이는 친구와 함께 탈출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35분에 방송된다.
23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장성규, 장도현, 장현성이 이야깃꾼으로 가수 폴킴, 솔지, 박효주에게 ‘작전명령 174호, 돌아오지 못한한 소년들’ 사건을 들려줬다.
1950년 8월, 모두가 잠든 새벽에 규호는 커다란 폭발음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고 무엇인가 결심을 하게 됐다. 다음날, 규호의 말을 들은 부모님은 경악을 했는데 하나뿐인 큰아들이 군입대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당시 귀했던 소고기를 들고 왔고 이왕이면 맨 앞에 서서 싸우라고 말하며 아들을 군대에 보내게 됐다. 부산항에는 규호 외에 700명이 넘는 군인들이 모이게 됐는데 이들은 비밀임무를 위해 배 한 척을 끌고 은밀하게 출발했는데 전원 북한 군복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10대 어린 소년 병사들은 전쟁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지만 사실 이들은 정확한 목적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지휘관 이명흠 대위는 소년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출항 이틀 전에 이대위에게 총을 잡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는 학생들을 작전에 투입 시키라는 것이었다.
700여 명의 소년들은 '장사상륙작전'을 하게 됐는데 6.25 전쟁 초반 국군이 낙동강 전선으로 밀린 상황이었던 1950년 9월 15일에 실시하는 인천 상륙적전에 맞춰 북한군을 교란하기 위한 작전으로 서해안의 인천과 정반대 방행인 동해안 포항 북쪽 25km 위치한 경북 장사리 일대 북한군 점령지역에서 전개되는 상륙작전이다.
장사상륙작전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작전 개시 초반부터 난관에 빠졌으나 대대가 겨우 상륙했다. 규호는 아는 형이 자신의 앞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배로 겨우 데리고 왔다.
규호는 북한군의 빗발치는 총알 속에 토치카(적진)을 찾고 없애는 작전을 수행했는데 얼굴에 북한군의 총을 맞았지만 다행히 스치게 됐다. 낙동강 전선 동부의 북한군이 도망을 가면서 12시간 만에 200고지를 차지하면서 승리를 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시신들이 가득했고 당시 19살이던 대환이는 친구 4명과 함께 전쟁터에 왔지만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139명의 전사자와 포로 39명이 발생했다.
다음날, 북한군의 반격이 시작되고 고지에 박격포를 쏘는 가운데 북한군 제2군단의 주 보급로인 7번 국도를 차단하는데 성공하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했다.
200고지에서 기관총이 발사됐고 UN군도 반격을 하며 포탄을 퍼붓게 되면서 불바다가 됐다. 총탄이 빗발치고 포탄이 쏟아지는 바다 위에서 운명이 엇갈리고 구조선에 올라탄 소년들도 있었지만 북한의 박격포가 구조선 중앙으로 날아왔고 팔 다리 잘린 병사가 여기 저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구조선의 문이 닫히고 이대위는 미군 소령을 막으며 남아있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며 애원을 했지만 결국 소년들은 두고 떠나게 됐고 헤엄쳐서 오는 소년들도 구출하지 않고 해변에 남겨져서 떠나가는 배를 보며 통곡을 했다.
대환이는 끝내 배에 타지 못했고 그를 포함해서 30여명이 남게 됐다. 남겨진 소년들은 북한군을 보고 숨었는데 대환의 진구 진목이를 발견하게 됐는데 죽은 줄 알았는데 생존했던 것이었고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 반가워했던 것은 잠시 인민군에 의해 잡혀갔다.
또 남겨진 소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적군의 포로가 되어 북으로 후퇴를 하게 됐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지쳐 쓰러지는 사람은 총알이 아깝다는 이유로 대창으로 찔러 죽였고 대환이는 친구와 함께 탈출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저작권자 © 톱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6/23 23:38 송고  |  reporter@topsta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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